고교 2학년, 그 이름이 가진 무게감은 다른 이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중(重)하게 다가와서. 가만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편입하는 첫날, 예상했던 것처럼 이번학기가 시작된 지 꼬박 3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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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신학기 시작과 함께 편입하려 했으나 사정으로 인해 이제 편입하게 된 아사쿠라다, 모두 잘 지내도록 하고-. 그럼 아사쿠라, 자기소개를."
"─아사쿠라 하나, 여기서 초등학교를 나왔고 중학교는 아키타에서 나왔어. 남은 시간 동안 잘 지내보자."
"…그게 끝이니?"
"네."
*
피곤해. 아침, 편입생이라고 신고식 겸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기까지 쏟아지는 시선이 어찌나 매섭던지. 일일이 마주하며 비웃어주다가도 지쳐 고개를 흔들고 있자니, 아주 그냥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높이 꺾여 올라간다. 그 모습이 또 우스워서 시니컬하게 비웃고 적당히 교사들의 눈을 가리는 창가 끝자리를 만끽했다.
말간 하늘, 선선하게 부는 바람, 휘날리는 벚꽃.
적당히 평화롭다.
*
부활동─?
나른한 비음이 귀를 거슬린다. 반장이라며 다가와 생긋 웃고 있지만, 어쩐지 그 표정에 선명하게 어린 적의가 빤히 보여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 이내 샐쭉이 웃으며. 속내를 감추는 것은 이미 아키타에서 그 일이 있었던 이후로 진절머리 나게 해야 했더라. 어째서 이제 겨우 서너시간 함께 한 사이인데, 이리 날선 거부감을 들어내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뭐, 애초에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지라 저리 대놓고 싫어! 하는 사람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아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용지를 받았다.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부활동 주제에 어째서 무조건 전교생 필참인지…. 조금 짜증을 담아 작게 투덜거리면서 다리를 꼬니, 앞에 앉은 등이 움찔 거린다. 딱히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앞에 앉아 있는 놈과, 뒤에 앉아 있는 년의 사이였기 때문에 왜 저런가 싶다가도 그냥 귀찮아졌다. 몽글하니 조금 생겼던 관심을 거두고 팔짱을 낀 채로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벚꽃은 바람을 타고 흩날리고 있었다. 하교길에 땅에 떨어져 얼룩진 꽃을 짓이기고 가는 재미가 솔솔할 것 같았다.
“비 올려나.”
나른한 공기가 몽글몽글 주변에 맴도는 것이 조만간 비가 내릴 듯싶었다. 약간 비릿한 물내음이 코를 간질이고 있으니.
*
드디어 끝났다. 정말 쓰잘머리 없이 길고 길었던 수업시간으로도 지치는 데, 담임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수다쟁이인지 알게 되고 나니 이젠 그냥 지쳤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아, 거기 아사쿠라!”
“…?.”
“부활동 신청서 꼭 생각해보고 제출하렴! 귀가부는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네.”
이미 들었던 말, 무엇하러 또 하나. 귀찮게 왜 나를 잡나.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삼켰다. 첫날부터 문제아 취급 받는 것은 곤란했다. 대충 수긍한 척 하고 고개를 끄덕이니 손짓하는 것에서부터 귀찮음이 묻어나- 화를, 돋구고 있었다. 간신히 참아내니 무시하고 쓱 나가는 모습에서 욕설이 치밀어 올랐지만 겨우, 겨우- 삼켜서.
뱃속에서부터 불쾌감이 스멀스멀 움직인다. 마치 독사처럼 꿈틀거리면서- 독니를 번득이는.
깊은 심호흡을 하고 집에 갈 준비를 서둘렀다. 일단은 일주일 정도의 유보 기간을 준다고 했으니, 그 안에 대충 부활동을 정해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되리라.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제한되어 있으니…. 적당하게 무난하고 일도 안하며 묻혀갈 수 있는, 딱 그런 정도의 것을 고르면 되리라.
대충 그 뒤로 주절주절 이어지는 담임을 대신한 반장의 말이라거나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는 얼추 분위기가 파장되는 쪽으로 흘러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학교생활, 제대로 할 것은 아닌지라.
대충 폼으로 가져온 가방에 마찬가지로 폼으로 챙긴 빈 노트와 필통을 집어넣었다. 마무리로 종례가 끝나고 나서야 돌려받는 핸드폰의 전원을 다시 키는 것으로 마무리. 집에 가고 싶진 않고 하니 적당하게 돌아다니다가 시간 맞춰 귀가할 생각이나 하면서.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던 찰나 삐롱삐롱, 알림음이 참 시끄럽더라. 짜증나 그대로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부활동, 그거 꼭 들어야하나."
걸어가던 찰나, 들리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 멈칫하니 흘러 내려 떨어진 종이 하나가 짜증스럽게 발목을 붙잡는다, 분명 가방에 제대로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져 발치를 구르는 것에 귀찮기도 해서 그대로 밟고 가려다가 참고 주워 올리니-. 하얀 종이 위의 검은 글씨들이 멋대로 춤춘다, 정말 짜증스럽게도 두통이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대충 가방의 틈 속에 종이를 구겨 넣고는 서둘러 신발장으로 내려갔다. 이대로 늦게나마 집에 가도 별로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그냥 도망칠까, 치밀어 오르는 유혹을 이기기가 힘들다.
"아사쿠라-!"
그러니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무심히 한 번 고개 돌려 시선을 주고는 그대로 멈춘 걸음을 다시 옮기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녀석은 뒤쫓아 와서 붙잡지도 않았고 또 다시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이래서 눈치 빠른 네가 좋은데- 싫어.
*
정처 없이 길을 걷다가 이상한 곳에 들어섰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단 그냥 길을 잃었다. 낯선 장소에서 여기가 어디지, 라니 무슨 지나가던 개가 비웃을 일이다. 거칠게 머리를 헤집으며 푸욱 한숨을 내쉬고 짜증을 삼키니 멀찍이 사람뭉치가 보였다. 하얀색 바탕에 남색 포인트가 들어간 저지, 뭉텅이로 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천상 부활동 끝나고 귀가하는 조라서.
얽히고 싶지 않아 얼굴을 찌푸린 채로 발머리를 돌렸다.
"뭐어- 나중에 전화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배터리와 본체를 분리해버린 핸드폰을 다시 조합하면 분명 얼마 안 있어서 부재중 목록이 뜰 것이고 거기서 적당한 번호를 골라 전화하면 어떻게든 되리라. 그러니 일단은 걷자. 꽤 기분이 상쾌해지고 있으니까-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