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하라 이자야는 오리하라 릿카란 자신의 사촌 누이를 사랑한다. 물론 남자대 여자 같은 이성으로서가 아닌 친척, 나아가 남매에 근접한 관계로. 하지만 그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었고, 오리하라 이자야란 남자의 사랑은 본디 360도에서 239도 비껴나간 것인지라 릿카에겐 결코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비록 그것이 티가 나지 않을 뿐이었지만, 어쨌든 결과만으로 따지자면 릿카의 감정은 부정적인 쪽이었다. 결국 시기는 찾아왔다. 바로 누구나 겪는 인생의 과도기인 사춘기를 겪으면서 표면 밑에 있던 그 문제가 표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태껏 살아가면서 약간의 마찰을 겪었지만, 그래도 어디하나 부러지거나 병원에 입원하는 일 없이 무사히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까지 오리하라은 같이 진학했다. 이후 고등학교는 남학교, 여학교로 갈리면서 나름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다. 물론 나름. 그리고 그 평화는 오리하라 이자야와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싸움이 커지고 소문나기 시작하면서 차츰 차츰, 릿카를 갉아 먹었다. 결국 릿카는 명문 호세 여자고교에서 저런 별종을 넘어서는 여학생은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그녀가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도쿄의 네코지마 고교로 전학 가던 날 호세여고 교사진들이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향해 신을 부르짖을 정도로 이케부쿠로에서 오리하라 릿카라는 이름이 유명해졌다.

 

호세의 광년, 그것은 오리하라 이자야란 미친놈과 헤이와지마 시즈오라는 불쌍한 미친놈과 얽힌 오리하라 릿카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에 얽힌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헤이와지마가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난 이후에, 그녀도 결국 오리하라의 핏줄이었다고, 그리 릿카와 사이가 조금 좋아진 후에 말했더라.

 

그리고 맞았더라.

 

 

침묵, 침묵. 이자야는 릿카가 학교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미리 심어둔 연락책과 스토킹 짓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드 크러쉬의 여파로 얼얼한 명치를 부여잡고 낑낑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그녀의 정체 아닌 정체와 과거를 밝혀낼 생각은 없었는데, 난처해졌다.

 

 

", 저기 릿카?"

 

"."

 

 

데구륵 굴러 마주친 눈이 흉흉하다. 이자야는 지금 릿카가 패닉에 빠져 있음을 직감했다. 꿀꺽, 마른 침이 절로 삼켜지는 것은 한때 그가 호세의 광년이라 불리는 분께 비오는 날 먼지가 날 정도로 얻어맞았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 소개할게요, 제 사촌인 오리하라 릿카입니다. 하하하. 제 말처럼 특별한 사이죠? 랄까, 근데 릿쨩- 수업 중 아니었어? 내가 걱정된 거야? 이야, 기뻐라. 하지만 그래도 역시 릿쨩 수업해야지. , 어서 가시옵소서- 고객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릿카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곤 그대로 돌려 앞 문 밖으로 밀어내면서 이자야는 웃는데 웃고 있는 게 아닌 그런 심정이 어떤 심정인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한동안 시즈오에게 개길 생각이 저 멀리 날아가 사라질 정도로 지금 그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어대고 있었다. 적어도 프로포즈는 하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있었지만, 입술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 저저저- 릿카? 릿쨩? 릿카님? 여보세요?"

 

"시발, 망했어. 들통 났어. , 내 이미지. 죽어 우자야. 인생에 도움이라곤 쥐뿔도 안 되는 녀석 같으니라고. 죽어 벼룩 따위. 아메바보다 못난 놈, 쓸모없는 놈."

 

", 잠깐만 릿쨩? 아메바보다 못하다니 그건 나름 상처인데? ?"

 

"닥쳐, 시즈오의 담뱃재보다도 못한 새끼야."

 

 

쿠궁, 머리 위로 1000000톤짜리 돌이 떨어진 것과 동급의 충격에 어질어질하다. 이자야는 잡고 있던 릿카의 어깨를 놓치고 비틀거렸다. 간신히 교실 밖 복도로 나왔지만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학생들에 아까 전 비명을 지른 여학생 때문에 다른 교실에서 내밀어진 고개도 제법 된다. 이자야는 제발 이렇게 많은 관객들 앞에서 릿카가 또 다시 호세의 광년에 접속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 릿카-?"

 

"하아."

 

 

묵직한 한숨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것은 어쨌든 살고자하는 본능인지라. 이자야는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님 등 알고 있는 신이란 신은 다 동원하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릿카가 터지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게 해주세요, 제발. 덤으로 저 신기하다는 눈이라던가도 치워주시고요.

 

이자야는 진심을 다해 천지신명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혼자 쓸쓸하지 않게 함께 천지신명을 부르짖는 중생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오리하라 릿카의 손에서 처절하게 굴려지고 있는 아오바죠사의 남자 배구부원들이었다.

 

릿카가 배구부 부활동 코치를 겸하면서 어렴풋하게 그녀의 본 성격을 경험해본 부원들은 입을 다물고 주변을 조용이 시키려 애를 썼지만, 가장 파급력이 강한 오이카와가 입을 다물고 석상이 되어버린 탓에 그 효과는 미미했다.

 

 

"잘 해."

 

 

. 친 어깨에 바짝 몸이 굳는다. 이자야는 저를 스쳐 교실 안으로 들어간 릿카를 반 박자 늦게 깨닫고는 황급히 따라 들어갔다. 저를 어색하게 곁눈질하는 학생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게 빤히 보이는 릿카는 그대로 분필이 가지런히 들어있는 작은 곽 하나를 챙기며 활짝 웃었다.

 

 

"반장, 이거 내가 가져간다? 교무실까지 가긴 좀 번거로워서."

 

 

어깨를 으쓱하며 교실을 나서는 릿카의 뒤로 이자야와 오이카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