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부산스럽게 보내던 하루의 시초는 잦은 실수를 거쳐 이내 한두 번 지나치면서 보던 거울 앞을 결국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야 30분 동안이나 차지하고 있는 기함을 토해내고 말았다. 빤히 바라본 거울 속의 여자가 부끄럽다는 듯 살짝 볼을 붉히고 웃는 것이 어딘가 낯설어서. 빤히 저의 얼굴임이 분명함에도 자꾸만 낯설게만 느껴져서 어색하게 굴리던 시선은 가만히 떨어져 가슴 위에 달린 명찰을 훑어보고야 말았다.
「오리하라 릿카(折原 六花)」
익숙한 이름을 읊조리면서 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늘 짓던 미소를 살갑게 지었다.
*
초조한 마음에 한 번 내려본 핸드폰 액정엔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고 흐르는 시간이 떠올랐다. 4: 58 pm. 약속한 장소까지 무사히 운전하고 갈 정신이 남아있을 리가 만무하다며 친절히 콜택시를 불러준 사촌 씨의 배려에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날라온 메일이 아니었다면, 릿카는 평소의 그 베스트 드라이버라 칭송받는 솜씨를 뽐내며 편안히 약속장소로 향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이도 저도 못하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만 있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 푸욱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정말이지 망할 우자야 같으니라고. 뭐가 감사는 감사야. 욕을 퍼부어 줘도 시원찮은데."
자기 멋대로 선 자리를 잡지를 않나, 멋대로 나타나 통보한 다음에야 안 나가면 자기의 이미지에 타격이 있다며 답지 않게 어린양을 굴지 않나. 정말이지 나갈 생각 하나 않고 있던 그녀를 나가게 만들게끔 홀라당 넘어가게 한 그 연기력을 쉼 없이 욕하고 또 욕하면서 그녀는 바득, 이를 갈았다. 정말 그녀의 사촌은 누구 씨의 말처럼 남들 인생에 도움 안 되게 쓸데없이 천재로 태어나 굴러다닌 탓인지 벼룩보다 도움이 안 됐다. 차라리 벼룩이 나을지도 몰라. 때마침 작게 중얼인 소리를 가로지르며 도착한 콜택시에 왠지 찝찝해져 사양할까 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차에 오르면서. 그녀는 약속장소를 말했다.
노을에 물든 거리가 퍽 예뻐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으며, 애써 차오르는 긴장을 숨결로 내보내면서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였다. 나이 29살에 겪는 선 자리는 전혀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지속하여 무료해진 일상에 새로움을 끼얹는 것은 환영할 일이니.
"하-아."
핸드백 속에서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점검하고 머리를 확인한 다음 옆머리를 쓸어 귓등으로 넘겨 찌른 채 가볍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달콤한 코랄 빛 립스틱이 부드럽게 번졌다.
"다 왔습니다, 손님."
"아, 네. 감사합니다. 얼마죠?"
"콜 부르신 분께서 이미 결재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요?"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입술에서 시선을 거두고 황급히 지갑을 꺼내려던 손이 멈칫한다. 릿카는 어쩐지 서비스가 좋은 사촌의 행태에 어딘가 불안함이 솔솔 느껴졌지만 애써 외면하고 택시에서 내리면서 가방을 고쳐 맸다. 바싹바싹 마르는 입안은 분명 긴장 때문이겠거니 억지로 합리화시키면서.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약속한 카페가 바로 코앞 이것만 왜인지 들어가기가 불편했다.
"후-우-."
그래도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깊이 심호흡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꽤 분위기 좋은 카페 내부에 눈을 반짝였다. 선 자리 때문에 오게 된 곳이었지만 그 이유에 인해 두 번 다시 오지 않기엔 내부가 꽤 그녀의 취향대로 꾸며져 있었고 카운터 옆에 전시된 스위츠들의 종류도 제법 많았으며, 가격도 저렴한 축이었다. 종종 오고 싶은 곳으로 점찍어두면서 그녀는 카운터에 서 있는 직원에게 그녀 나름의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저기, 오리하라 이자야라 말하면 알 거라고 하던데요."
"아, 네. 어서 오세요."
자리를 안내해주는 점원의 뒤를 따르면서 어딘가 심장이 두 근, 두 근. 요동치기 시작했다. 높은 소파와 파티션을 지나 가까워지는 거리에 맞춰서 보이는 어렴풋한 실루엣이 꽤 익숙해서. 그녀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늦췄다.
"저 손님, 일행 분께서 오셨는데요."
"아, 그래요?"
그 옆으로 다가가서면서. 릿카는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곤 울 듯, 웃는 듯.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녀가 누구임을 확인한 상대방 또한 이건 예상 못 했는지 동그랗게 뜬 눈과 표정이 여전히 귀여워서.
"릿, 카…?"
진심으로 저의 사촌의 멱살을 잡아 흔드는 것이 아닌 그 잘난 면상에 핸드백이던 뭐든 끼얹어 버릴 거라 다짐하며 그녀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그 찰나의 순간 먹먹하게 젖은 가슴에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오랜만이야, 테츠."
오랜 첫사랑이었던, 오랜 연인이었던 그에게 인사하면서. 릿카는 분명 어딘가에서 웃으며 보고 있을지 모를 자신의 사촌, 이자야를 욕했다.
선을 보기로 한 그 날, 그녀는 첫사랑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