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을 안내해주고, 녀석이 씻는 동안 하나마키 여사가 전하라 했던 간단한 요깃거리를 먹었다. 먹기는 귀찮았지만 속은 쓰렸고 안 먹으면 직접 먹여줄 거라는 녀석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로 또 어떤 놀림을 하거나 혹은 잇세이에게 조르륵 달려가 미주알고주알 말할까 싶어 불만을 삭히고 조용히 손과 턱을 움직였다. 


퍽, 맛있었다.



멋대로 쳐들어와 하룻밤 신세지겠다는 놈에게 거실을 내주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걸어 잠그려고 했더니 그새 쫓아와 문고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녀석에 짜증을 내며 그냥 포기했다. 손을 놓고 침대로 기어 올라가니 쫄래쫄래 다가온 녀석에 기가 막혀 보고 있자니, 손이-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마니, 때릴 줄 알았던 손은 이마를 짚어, 뺨으로 미끄러졌다.



“열 없네. 간호사가 열 조심하라고 했거든, 너.”



감았던 눈을 뜨게 만드는 귓가에 닿은 그 간질이는 목소리에 번뜩 눈을 떠서 노려보니 킬킬 웃는 모습에 짜증이 확 일었다. 그래. 나만 당할 순 없지. 그대로 손을 뻗어 목을 감싸고 내렸다. 빗겨가듯 입술을 스쳐 뺨에 꾹, 입술을 찍어 눌렀다가 떼면서. 


활짝 웃었다.



“굿나잇 뽀뽀 정도는 해줄게. 하나마키 어린이.”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주제에 녀석의 귓불이 벌겋게 올라온 것에 꺄르륵 웃으며 손을 놓고 빙그르 몸을 돌리니 끼익, 눌리는 무게가 느껴졌다. 한쪽으로 눌린 무게에 스륵 몸이 쏠리니 그 위로 그림자가 졌다. 



“뽀뽀가 아니라 키스는 어때?”



샐쭉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위에서 내려 보는 시선이 조금 일렁였다. 무겁게. 가라앉은 시선은 뜨겁게 타고 있었다. 이런 시선을 나는 알고 있다. 꽤 귀찮게 깊은 시선이었다. 그때보다 깊고 뜨거운데- 귀찮기는 하지만 무섭지도 않고 딱히 밀어내고 싶지도 않은 솔직함이었다. 


그래서. 피식 웃은 그 상태 그대로 손을 올렸더라. 말캉이는 볼살을 살짝살짝 꼬집으며 밑으로 끌어내리니 그대로 내려앉는 것에 살풋 입술을 벌려 마주했다. 


퍽. 뜨끈하게 매달리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머리 옆에 기둥처럼 세운 팔은 그 밑으로 더 이상 기어 내려가지 않았고 걸터앉은 자세 그대로 내게 더 기대지도 않았다. 조급하게 매달릴 줄 알았는데 침착하게, 뻣뻣하게 조심스런 행동에 오히려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던 찰나. 뺨을 감싸고 있던 손이 퍽 홧홧한 감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뜨겁게, 헤집던 것이 떨어졌다. 미친 듯이 매달려 허덕이는 것에 금방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뺨을 감싸던 손을 밑으로 내려 어깨를 툭 친 순간, 부드럽게 떨어져 나갔다. 한껏 아쉬워 죽겠다는 눈을 한 채로.



“─키스할 때에 눈을 감아야 하는 걸 모르는 거야?”


“너도 안 감았잖아.”


“내 마음이야.”


“나도 내 마음이야.”



그래, 라고 말하려던 순간 다시 한 번 녀석의 고개가 내려 왔다. 여전히 눈을 감지 않고 선명하게 타오르는 감정을 안고 그대로 정직하게 달려드는 것에 그대로 손으로 막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받아주기로 했다. 이번에도 서툰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아까 전과 달리 꽤 진득하게, 그리고 절절한 느낌이 들게 매달렸다. 매달린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퍽 재밌었다.


밀어내면 매달리고 도망치면 찾아 헤집는다. 그 와중에 꽤 은밀하고 농밀하게, 질척하게 진득히 달라붙는 것이 은근한 느낌이 있었다. 간질간질한 기분은 꾹 눌러 삼키면서. 비식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녀석은 무너져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어깨에 머리를 묻고 몰아쉬는 숨에 무겁다, 간지럽다 깔깔 웃으며 그 등을 꼭 안으며 매달리니, 쿵- 쿵 심장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느릿하던 그것은 점점 더 빨라지며 그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맞춰서 손가락을 툭툭 두드리니 부끄러운 듯 긴 침음성을 내며 더 매달리는 녀석에 진짜 무겁다고 투덜거렸다. 그랬더니 겨우겨우 떨어진 녀석의 얼굴은 토마토 저리가라 새빨갰다.



“같이 자주기까지 해야 해?”


“그건 내가 못 참을 것 같은데.”


“어머 짐승.”


“됐고. 나 나가면 문 닫아라.”



긴 숨을 내쉬면서 손에 얼굴을 묻은 녀석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웅얼거리며 난리를 쳤다. 구태여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주워들을 필요도 없고 그런 마음도 없어서 옆으로 누워 턱을 괸 채로 나른하게 보니 녀석의 어깨가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정-말? 닫아두길 바라는 거야?”



밤에 내 품에 기어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니. 덧붙이는 말에 점점 땅으로 파고들 기세의 녀석은 벌떡 일어나 쿵쾅거리는 걸음으로 그대로 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웃음이 와르륵 터져 나왔다. 



뒤척이는 찰나에 이불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침음성이 흘렀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도저히 찾아오지 않는 잠에 일단 알고 있는 욕부터 시작해서 주워들은 외국의 온갖 욕설을 다 웅얼거리며 데굴데굴 굴러도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어서. 침대에서 그대로 떨어져 고인 이불 위에 그대로 풀썩 누우면서. 긴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몸이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짜증나.”



답지 않은 장난을 했고, 그것에 또 응한 것은 녀석이었으며 또한 그것을 받아준 것도 자신이었다. 마냥 저 녀석만을 탓하기엔 어쩐지 내 잘못이 조금 더 큰 것 같아서 따질 수도 없고 화를 내자니 찔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결국엔.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아, 짜증나.


벌떡 일어나 베개를 들고 이불 귀퉁이를 잡아 질질 끌고 나가니 녀석이 있었다. 쇼파 위에서 퍽 나른한 얼굴로, 길게 뻗은 몸을 뽐낸 채로 나름 편하게 자는 모습이 어쩐지 얄미웠다. 집에, 아늑한 잠자리까지 있는 집주인이 정작 자지 못하고 있고 불편한 잠자리의 객은 편한 몸으로 쿨쿨 자고 있다. 


때리고 싶어, 얄미워.


입술만 삐죽삐죽 하다가 이불을 툭 바닥에 떨구고 베개를 양 손에 야무지게 잡고 때릴려다가 일단 참았다. 베개까지 바닥에 내려놓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녀석을 보다 풀썩 그 배 위에 엎드렸다. 움찔거리는 녀석의 몸에 손을 뻗어 그 뺨을 문질문질하다가 쭈욱 잡아 늘리니. 끄응, 앓는 소리가 들렸다. 



“하, 나?”



부스스 눈을 떠올린 녀석은 멍한 기색이었다. 아직 잠결인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이게 꿈결인 줄 아는 상태였다.



“하나, 하나.”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던 것과 다르게 어눌한 발음으로 부르는 이름은 퍽 달콤하게, 어색함 없이 덕지덕지 쏟아져 내렸다. 녀석이 몸을 돌려 옆으로 눕더니 그대로 손을 뻗어 나를 잡아당기는 것에 당황해 눈만 깜빡이니 그대로 그 품에 끌려가 안기고 말았다. 따뜻한 호흡이 간질간질, 목덜이 언저리를 헤집었다. 


기분이, 묘했다.



“하나, 오늘은- 어쩐지 따, 뜻한- 데?”



웅얼거리던 소리가 늘어지더니 끝에 가서 삐죽 올라갔다. 잠이 뚝뚝 묻어나는 몽롱한 목소리가 아닌 똑바로 깨어난 목소리에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방근 전의 몽롱한 눈이 아닌 선명한 그 눈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허리 아파.”



기이한 침묵이 사이를 가로지었다. 



“어, 어어- 응?”



녀석의 손이 떨어졌다. 그 위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켰다. 데굴데굴 구른 눈이 대충 정신 차린 모양이었다. 급히 상체를 일으킨 녀석은 덮고 있던 긴 수건을 움켜쥔 채로 빠르게 뒤로 불러나 팔걸이에 엉덩이를 밀착했다. 다리까지 모아 무릎을 끌어 모은 채로 동공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에 내가 덮치려는 모습이어서. 조금 묘했던 기분이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다.



“야.”


“어, 어어어 으응!?”



소리 낮춰, 목소리를 깔고 날카롭게 툭 던지니 녀석이 입을 두 손으로 막은 채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던 찰나에.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야. 녀석은 눈만 뜬 채로 입을 가리던 손을 내렸다. 벙긋벙긋 거리는 모습에 물고기냐, 툭 던지려던 말을 꾹꾹 참아 삼키면서. 



“잠이 안와.”



겨우 말을 마무리 짓자. 녀석은 어딘가 허탈한 모습이었다. 뭘 기대한 거야. 조금 사납게 웃으면서 묻자 녀석은 붕붕 소리가 날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미친 줄 알았다.



“그, 그래서?”


“재워줘.”



툭 밀어 던진 말에 녀석의 몸이 다시 한 번 요동쳤다. 어리벙벙한 눈을 하던 녀석이 그대로 허우적거리다가 팔걸이에 기댄 채로 그대로 몸을 뒤로 넘기면서. 나가떨어진 그 모습에 황당해 보다가 쇼파 위를 기어 팔걸이에 기댄 채로 길게 누운 채 내려 보니 녀석은 데굴 몸을 굴려 엎드린 상태로 바닥에 손이 움직이는 모습만 남긴 채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따라 읽어봤다. 범인은 하 ㄴ..ㅏ... 


망설임없이 그 머리를 향해 바닥에 있는 베개를 주워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