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우리 사이에 자리했다. 여전히 케이크의 단내는 코를 찌르고 있었다. 손에 들린 포크가 무기가 될 것만 같아서 내려놓으면서 씨근덕 거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녀석은. 여전히 재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나.”



앙 다문 잇새 사이로 욕설이 쏟아져 내릴 뻔한 것을 억지로 참아 삼켰다. 끝까지. 이기적으로 구는 것은 너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지독하게 상처 받은 눈을 하고 있는 건데. 피해자인 척 굴고 있는 건데. 엄연히 지금 너는 내게 가해자였고, 너가 먼저 선을 넘었다. 도를 넘어선 것은 너였다.


그런데 왜. 내가 자꾸 나쁜 사람으로 만드나, 도대체 왜. 왜. 자꾸만. 그 사람들처럼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나가.”


“─싫어.”



스미레는. 그러지 않았어. 



“나가, 당장. 빨리.”


“싫다고.”



스미레가.



“하나.”



네가, 필요해. 나의 제비꽃, 스미레. 네가.


눈앞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에 그저 눈을 깜빡이던 그 순간에. 너의 따뜻한 품을 떠올리게 하는. 그 아늑함 속으로 떨어졌다. 


멀어지는 순간 붙잡은 손은, 너처럼 컸으나. 지독하게 차가웠다. 네가 아니었다. 


스미레. 꺼질듯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너를 불렀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다행스럽게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후가 아니었다. 단순하게 삼십분 정도 지난 후. 그나마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대처가 빨랐다, 고 말하기도 우스웠던 것이. 녀석은 바보같이 간호사도 부르지 않고 날 붙잡고 있었다. 


내가, 싫다고 했더라. 발작으로 난리를 치면서, 스미레를 부르짖으면서, 녀석에게 매달려 그렇게 울부짖으면서도. 간호사는 죽어도 싫다고.



“그걸 또 들어주니.”


“그럼 어떻게 해. 그 말마저 안 들었다간 정말로 큰일 날 것 같았는데.”



침착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그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럴만도 했다. 병원에 입원하는 계기가 되었던 발작은 그냥 기절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이번처럼 온몸을 쥐어뜯고 난리를 치면서 미쳤던 발작이 아니었다. 



“…야.”


“왜.”


“이름, 부르지 않을게.”



순간 적으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고작 이름, 하나에 발작을 일으킨 줄 아는 녀석의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스웠다. 고작 이 정도로 물러날 것이었으면서 그렇게 몰아쳤나. 사람을 그렇게 몰아 세웠나. 물론 본인은 모르는 행동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더 이상 깊어지려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고개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몰아 쉰 숨 사이로 단내가 훅 퍼졌다. 



“─슈. 케이크. 내가 먹을 거야.”



벌이야, 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녀석은 똑똑한 녀석이니 알아들었을 것이었다.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내가 숨긴 말들을 알아서 듣는 수밖에 없었다. 짜증날 정도로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그리고.”



보라, 알았다는 저 눈을. 그게 거슬려서. 전혀 고까워서가 아닌 거슬려서. 마른 입술을 핥으며 녀석이 따라준 물을 조금씩 천천히 마셨다. 


여전히 단내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가득했다.



“이름 불러.”



이미 부른 걸 다시 바꿔서 불러도 시간은 돌아가지 않아. 쏟아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어. 


고슴도치마냥 혀에 이리저리 잔뜩 뾰족하게 솟아오른 가시는 아무렇지 않게 둔탁한 휘두름을 보였고, 그것에 얻어맞은 너는 어리벙벙한 눈치였다. 고까워서가 아니라, 거슬려서. 다시 한 번 되뇌인 말을 너는 듣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입 밖으로 밀어낸 것이 아닌 내가 삼켜낸 말이었으니. 


자꾸만 속이 뒤틀려서. 저 녀석이랑 있으면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또 다시 기분이 뒤집어졌지만 그리 심한 정도가 아니라서 내색하지 않았다.



“이름, 불러줘. 빨리.”



샐쭉이 웃는 내가 녀석의 눈동자에 비춰졌다. 내가 받는 것도 아닌데도 어쩐지 기분 나빠, 입술 끝이 실룩였다. 그것조차 여과 없이 비춰내는 눈동자가 지독하게도 거슬렸다.



“…하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밀어낸 너의 부름은. 문득. 언젠가의 잇세이가 불렀던 그. 이름처럼, 그래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순간에. 녀석이, 잇세이처럼 웃었다.


잇세이처럼. 그 날. 내가. 잇세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했던 그 날처럼.


네가. 틈을 비집고 쏟아졌다.



“…응.”



그리고. 두 번째로 겪는 그것을. 나는. 밀어낼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결국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쏟아지는 널 밀어내지는 않아. 이해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래, ‘하나마키’.”



나한테까지 강요하지마.



“케이크, 먹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없이 웃는 녀석의 얼굴은 손끝의 가시마냥 거슬렸지만 참았다. 여전히 포크는 쥐고는 있을 수 있어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아서. 녀석을 빤히 바라보니 알아서 케이크 시중을 들었다. 역시 눈치가 빨라서 싫지만, 또 편해서 좋기도 하고.


묘한, 녀석이라니까.



“맛있냐.”


“안 남겨 줄 거야.”


“쳇.”



뻔한 수, 너나 나나.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론 금방 들키고 만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럴까. 픽 웃으며 더 얄미운 얼굴을 한 채로 녀석이 떠먹여 주는 슈크림 베이스 케이크를 다 먹어버렸다. 달콤하게, 부드럽게 녹아내린 것에 조금 속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저 녀석이 좋아하는 걸로 약을 바짝 올려서 기분은 만족스러웠다.



“다른 건?”


“한 입만.”



나른하게 웃으면서. 조금 부른 배를 문지르다 아, 하고 입을 벌리니 픽 하고 웃는 얼굴로 얌전히 케이크를 나르더라. 조금 크게 깨물었는지 입술 끝에 녀석의 손끝이 닿았다. 조금, 시린.



“꼭꼭 씹고.”


“내가 애니.”



이번엔 조금 더 얕게 잡은 것이 티가 나는 그 손의 끝을 살짝 깨물 듯 케이크를 물었다. 일부러 더 노골적으로, 깨물고 긁어내리면서 혀로 핥아 올리면서. 부러 입술에 묻은 크림을 손으로 훑어내 핥기까지 서비스로 보여줬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반응은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야하네.”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지만 머리칼 사이로 들어난 귓불이 빨갛게 익은 것을. 나는 이미 본 후였다. 네가 뛰어봤자 결국 내 손 안이다. 제 아무리 재롱을 떨고 이기려 들어도. 악과 깡으로 아키타의 차가운 겨울을, 사람을 겪은 내가 너에게 밀릴 리가 없는 걸.


마지막까지 놀리듯 손가락에 묻은 크림의 유분기를 티슈로 닦아 내고는 심드렁하니 녀석을 보았다. 대충 내가 한입씩 먹은 것들의 남은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까.”


“?”


“예전에야 이렇게 먹곤 했다지만 떨어져 있는 기간도 있었는데.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니니, 너?”



테이블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서. 케이크를 절단 내고 있는 녀석을 빤히 바라봤다. 


어릴 적에나 입이 워낙 짧은 나와, 막 뛰노는 것의 즐거움을 배워먹을 것이 부족했던 녀석이나. 서로의 합의점으로 내가 어느 정도 깔끔하게 잘라 먹은 것을 녀석이 가져가 먹는. 그런 식으로 서로 공생을 추구했다지만. 그 이후로 떨어져 지낸 시간은 사춘기를 끼고 한 무법의 시기. 그 시기가 지나간 이후에 다시 만난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때의 버릇을 꺼냈다. 웃기게도 양방에서 서로 인정한. 그런 오랜 버릇, 어색하게 밀어내지 않는. 


그것을 지적하니 녀석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제야 본인도 자각한 모양이었다.



“보통은 꺼림칙하다고 싫어하는 건데. 가족이라도.”


“글쎄다. 그래도 결국엔 돈 아끼는 쪽으로 가게 돼서.”



돈도 아끼고 밥도 배부르게 먹고.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되묻는 녀석에 그래, 그런 거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내는 돈에 비해 먹는 양이 많지 않은 입장으로선 펑펑 쓸 수 있을 만큼 용돈이 남아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까운 것은 아까운거라서. 다른 쪽으론 모르겠지만 유독 먹는 쪽으론 옆에 저 녀석을 끼고 있고 싶어서. 전부 이 버릇때문인가 싶어 가만히 케이크를 마저 시식 중인 녀석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아닌 척 빼앗길 것 같아 긴장한 놀림이 귀여웠다. 



“하나마키.”


“어, 어?”


“안 뺏어 먹을 거야. 배불러.”



픽 웃고는 그대로 테이블에서 떨어져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어느새 마음은 무분별하게 출렁이며 넘실거리던 것에서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데굴데굴 구른 시선이 눈앞의 녀석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다시. 닿았다. 


잇세이도 그렇고 녀석도 그렇고. 둘과 관련되면 감정은 멋대로 날뛰었다. 주인의 것을 타고 흐르는 것이 아닌 눈앞의 상대방을 보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분명 생각 되었다. 잇세이의 앞에서는 조금 처연한, 숨죽인 배려. 녀석의 앞에서는 까칠한, 편안함과 더불어 피곤할 정도로 귀찮은. 온갖 생각이 통통 튀어다니다가 결국엔 잇세이란 종착지에 도달했다.


잇세이.


아침에 그가 하려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한 것은 예상, 그가 직접 한 말이 아니었다. 과연 무슨 말을 할 려고 했을까.


머리는 핑글핑글 돌았지만, 결국엔 멈췄다. 그가 무슨 말을 했건 상관없이 분명 자신은 그의 뜻대로 해줄 수가 없었다. 이제와서 그걸 고려해본다고 해도 결국엔 똑같은 말만 할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기대려고 하는 마음이. 아마도 원인은- 저 녀석일 것이었다.


무조건 사람을 기대게 만들지 않고서는 못버티는 저 녀석. 



“입가심으로 포카리?”


“마음대로 해.”



여태까지 존재를 몰랐던 한켠에 세워둔 녀석의 가방에서 포카리가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무슨 도라에몽 주머니를 이식한거니, 하고 묻자 연습용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문득.



“근데 너 여기 왜 있어.”



아침, 잇세이와 그녀의 대화가 떠올라서. 포카리를 마시면서 심드렁하게 물어보니 살랑살랑 여우 웃음을 지으며 휴가라 말하는 것에. 비죽 입꼬리를 비틀었다.



“뭔 개 소리야. 아까 잇세이가 오늘 연습 때문에 바쁘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했던 애가. 너만 혼자 여기 가라고 그냥 그럴 애가 아니란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잖니.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그리 속살거리며 픽 웃으니 데굴데굴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조막만한 머리, 굴려도 결국엔 내 손바닥 안이라는 걸 너는 왜 몰라.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