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소란스럽다. 특히나 가족 혹은 이웃 중에 누구 하나라도 운동과 관련 있다면 더더욱.
“아으윽-”
요란히 울리는 알람에 앓는 소리를 흘리며 베개를 머리 위에 덮어도 보고 이불 속에 파고 들어가 귀를 틀어막아도 결국엔 쩌렁쩌렁하게 귀를 뚫고 지나간다. 매번 반복되는 것이지만 또한 매번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이라서. 결국 오늘도 소음에 지고 만 쪽이 비척비척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잇세이, 저 망할 자식….”
작은 소녀,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된 그녀가 피곤으로 얼룩진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해가 봉긋 솟아오른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새벽 5시의 이른 아침.
*
일주일의 첫 시작, 매 주의 첫날 월요일. 늘 그랬듯이 고토家 여자들의 아침은 오늘도 한없이 늦고 나른하다. 때문에 항상 바쁜 것은 혼자 출근 준비를 하는 고토의 남자. 그리고 그들의 집에 아침을 신세지러 오는 이웃집 소년, 한 명. 어릴 적에 만나 시작된 집안의 인연은 두 자식들이 아이, 소년소녀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성인을 앞둔 시기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아, 잇세이 왔구나. 어서 오렴.”
“오늘도 아주머니랑 누나는 자는 중인가요?”
“아아. 오늘도 그렇단다.”
조금 쓰게 웃는 입가는 아침을 홀로 맞이하는 가장의 서글픔이랄까, 그런 것이 엿보여 마츠가와 잇세이, 어린 날의 아이였던 그는 쾌활한 웃음을 머금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현관에서부터 솔솔 코를 간질이는 미소된장의 구수한 냄새라거나, 맛있는 냄새는 청소년기의 배고픈 위를 건드리고 있었다. 가방을 현관 옆에 내려두고 졸랑졸랑 주방으로 향한 그는 식탁 위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상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야, 맛있겠다.”
“푸흐흐, 고마워 잇세이.”
부러 그가 좋아하는 콩자반을 한켠의 반찬으로 준비해준 고토 류, 그의 배려에 벌써 얼굴 가득 신남이 퐁퐁 매달려 있다.
“이제 슬슬 츳쨩이 나올테니까 마중 가줄래?”
“어제 누나 몇 시에 잤어요?”
“글쎄다. 일단 내가 자라고 말했던 시간이 새벽 1시였던 건 기억하니.”
“─제가 방을 바꿔야 할까봐요.”
마무리로 미소 된장국에 국자를 넣어 휘젖던 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전부 늦게 자는 제 딸이 문제였지, 마츠가와의 이른 아침이 문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힘없는 마츠가와를 보면서 눈을 찡긋 거리며 윙크를 날렸다.
“그럴 필요가 뭐가 있니. 누누이 말했지만 늦게 자는 녀석이 잘못이래도.”
“하지만-.”
“그리고 어차피 네가 나가고 나면 다시 자는 애란다. 그리 미안해할 필요가 없어요.”
“─네에.”
자, 이제 곧 일어날 딸을 마중가주겠니. 라 웃으며 등을 떠민 류는 터덜터덜 2층으로 올라가는 소년의 등을 보았다. 저의 딸 손을 붙잡고 울어대던 아이는 어느새 저렇게 듬직한 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그 사이에- 저의 딸도 자란 것은 분명했는데 아직까지도 어린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는 피식 웃으며 국을 그릇에 덜었다.
*
바로 맞은편의 창문을 뚫고 귀를 어지럽힌 알람 소리 덕분에 어찌저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뜻대로 따르지 않는다. 밍기적거리며 이불의 품에 쌓여 있던 몸이 들썩거린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고, 옆집의 소년이 그녀의 집에 방문한 이후였다.
“으-응, 졸려어-.”
퐁퐁 끊임없이 터지는 작은 하품을 달고 비척비척 돌아다니는 걸음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것만 같아서. 방문을 열고 나온 몸이 위태위태하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발이 꼬여 주저앉을 뻔한 그녀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는 손이 단단히 받아주면서. 콩, 하고 부딪친 코의 얼얼함에 반쯤 날아간 정신 줄을 다시 잡아 챈 그녀가 몽롱한 눈을 느릿하게 꿈뻑였다.
“아, 잇세이. 알람 좀 어떻게 해봐, 누나 힘들다.”
“미안, 요즘 아침연습이 빡세져서.”
많이 힘들면 들어가서 다시 자, 등을 떠밀어주는 손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흔든 그녀가 나른하게 늘어지는 몸을 움직여 매달렸다. 반쯤 기대다시피 매달리는 것에 단단하게 받쳐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토의 외동딸, 미츠키는 마음 놓고 제 몸이 편한 대로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어린 아이, 이제는 소년으로 훌쩍 커진 마츠가와는 작은 한숨과 함께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누나, 더 말랐어.”
“괜-찮아, 이제 곧 살찔거야.”
웅얼이면서도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하는 것에 정말 졸린건가 의심스럽지만,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마츠가와는 알고 있었다. 정말로 그녀는 졸고 있었다. 저의 목에 팔을 둘러 감싸는 손길이 천천히 늘어지는 것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나왔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에 다시 곱게 눕혀주면서. 이불까지 꼼꼼히 덮어주니 꾸물거리면서 들어가는 몸이 이윽고 아기마냥 동그랗게 말렸다.
“잘자, 누나.”
아침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렇게 시작했다.
*
오전, 든든하게 고토에서 아침을 먹고 등교하는 데에 성공한 마츠가와는 늘 그랬듯이 제일 먼저 부활동에 참여했다. 오전 부활동으로 반쯤 자고 있던 머리를 번쩍 깨우고 수업에 임하면 그 기분이 남달랐다. 그렇게. 아침 수업을 시작하고. 끝내고. 이윽고 점심에는 류의 특제 도시락을 시식하고. 매점의 주스로 간단한 입가심을 한 이후에 시작하는 오후 수업 시간, 시작하기에 앞서 마츠가와 잇세이,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2학년에 재학중인. 그는 오늘이란 시간 속에서 유래 없을 아주 깊은 곤란함을 느꼈다.
“맛-층?”
“아, 오이카와 저리가. 오늘은 안돼.”
히죽히죽 웃으면서 다가오는 친구, 오이카와의 머리를 손으로 막아 밀으면서. 그는 저의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운 메일에 눈가를 찡그렸다. 발신자는 미츠키, 그의 옆집 누나. 내용은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그가 있는 학교에 온다는 것. 어차피 하교 시간을 맞춰서 올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오늘은 의무적으로 부활동의 휴일인 월요일. 딱히 안 될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어쩐지 껄끄럽다. 여태껏 친구들에게서 꽁꽁 숨겨왔던 그녀와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타이밍이 불편한건지도 몰랐지만, 그는 일단 침묵했다.
“맛-키! 보세요, 맛층을! 역시 애정이 식었나봐요!”
“흑흑 그런가봐요! 그의 애정을 훔친 도둑고양이를 찾아야겠어요!”
“─어이 이와이즈미. 쟤네 좀 어떻게 안될까.”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덧붙이는 말에서 느껴지는 초연함에 마츠가와는 침묵한 채로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옆에서 오이카와와 하나마키가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이미 질린 두 사람은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숙제 같은 것을.
“어이 오이카와! 너 또 시끄럽게 뭐하고 있는 거냐! 네가 제일 먼저 숙제 발표해라!”
“으악, 언제 들어온 거예요 하라쨩!?”
마츠가와는 조용히 오이카와를 향해 성호를 그었다.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의 뒷자리였기 때문에 쥐죽은듯이 엎드렸고, 이와이즈미는 그런 둘을 모르는 사람인 척 외면했다.
“다음은 하나마키, 너야! 네가 그런다고 안보일 줄 알아!”
“윽!”
“그리고 거기! 외면하고 있는 이와이즈미, 마츠가와! 너네 둘도 포함이야! 이미 셋트인 주제에 모르는 척 한다고 되니?”
마츠가와는 들었다. 옆자리의 이와이즈미가 망할 오이카와, 죽여 버린다라고 빠르게 중얼거리는 그 소리를.
*
시간은 죽죽 흘러, 이제 조금 있으면 하교 시간. 능글맞게 웃으며 달라붙던 오이카와아 하나마키를 간신히 떨어뜨리고 달려가 미츠키와 만난다면 어찌저찌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그런 시간.
마츠가와는 긴장으로 바짝바짝 말라가는 입에 찬 물을 부었다.
“어이.”
“─이와이즈미?”
“정말로 너 오늘 이상해.”
오이카와가 괜히 그러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이거냐.
죽느냐 사느냐, 그 앞에 있는 것만큼 정말로 진지한 얼굴을 한 주제에 들어 올린 왼손의 새끼손가락이 참 안 어울렸더라. 마츠가와는 이와이즈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오이카와와 하나마키의 궁금해 죽겠다는, 놀리고 싶어 미치겠다는 그 얼굴에 푸욱 한 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런거. 그냥 누나야. 옆집 누나.”
고작 단순한 옆집 누나, 정의 지은 순간 김이 빠졌다는 이와이즈미의 태도에서 마츠가와는 브루투스의 심정을 절실하게 느꼈다.
“에이, 그냥 옆집 누나인데 그렇게 가드가 심-해? 응? 응? 이상하지 않아, 이와쨩? 응? 응?”
“뭐가. 미카 누님이랑 똑같은 거네.”
“아. 순간 인정해버렸어.”
오이카와는 저의 누나와 이와이즈미 사이의 담백함, 그리고 그를 괴롭힐 때만 발휘되는 그 동지애를 떠올리고는 금새 차오른 흥미를 꺼트렸다. 그런 그와 한 배를 탔었던 하나마키는 이미 저의 누나들과 제 친구들의 관계를 떠올리곤 마찬가지로 흥미란 존재를 고이 접어 하늘로 날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어쩔 건데 너희들. 나 오늘 누나랑 약속 잡혔는데.”
으레, 부활동이 쉬는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교 후에 곧장 패밀리 레스토랑에 쳐들어가 공부를 하거나 혹은 지난주의 아쉬웠던 플레이들에 대해 의논하곤 했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럴 예정이었지만, 마츠가와의 불참 선언에 그들은 그저 각자 어깨를 으쓱하며 집에 가서 쉬는 정도로 끝내지 뭐지 하는 식으로 암묵적인 약속을 파기했다.
“그럼. 잘 놀고 오라고 맛층!”
오이카와씨가 응원해줄게! 같은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오이카와의 입에 아주 작은 소란이 있었지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