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른한 고양이 같은 사람이었다. 생긴 외향에서만이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까지. 사소한 것 하나 모두 모아놓고 나면 분명 고양이가 아니냐고, 그런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랑스런 아이.

 

그게 바로 코즈메 켄마였다.

 

 

“쿠로.”

 

“왔어?”

 

“응, 졸려.”

 

“안돼, 오늘 꼭 사야하는 게임이라며?”

 

 

같이 오고 싶었지만 학교 일로 인해 따로 떨어져서 만나게 된 것이 불만스러운 걸 애써 숨기면서. 쿠로오는 저의 손을 잡아 오는 저의 사랑스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은 그의 손짓 하나에 부드럽게 흐트러지면서 살랑살랑 흔들렸다.

 

 

“으응, 그냥 쿠로가 사오면 안돼-?”

 

“안돼, 난 몰라. 그러니까 켄마가 가서 골라야 해.”

 

 

많이 피곤한지 보기 드문 애교까지 부리면서 매달리는 것에 순간 혹할 뻔 했지만. 쿠로오는 그렇게 될 경우 자신은 홀로 게임가게에, 그리고 켄마는 그대로 홀로 집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애써 유혹을 이겨 냈다.

 

 

“나빠.”

 

“에이, 나같이 나쁜 사람이 또 있어?”

 

“─미워.”

 

“어라, 그건 좀 상처.”

 

“흥.”

 

 

뜻대로 되지 않음에 골이 난 모양인지, 켄마의 눈초리가 조금 매섭게 올라섰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쳐내지는 않고 그저 피해내는 것에서 더 분명하게 알 수가 있어서. 쿠로오는 저에게 삐졌다고 온몸으로 어필하는 켄마의 모습에 터질 뻔한 웃음을 애써 삼키고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마침 그녀의 옆으로 지나가던 사람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것에 짙은 검은색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불쾌감으로 넘실거리는 그 눈이 사납게 뒤를 쫓는 것에 힐긋, 올려다 본 켄마의 눈이 반짝, 빛났다 가라앉았다.

 

 

“쿠로. 애플파이.”

 

“으응? 아직 우리 저녁도 안 먹었다고? 그리고 너 낮에 간식으로 먹었잖아. 메이드 인 야쿠 작으로.”

 

“그래도 쿠로가 사준게 더 좋아.”

 

 

아, 이거 좀 무리. 쿠로오는 입술을 삐죽이며 새초롬하게 속살거리는 켄마의 말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그녀의 머리에 이마를 기댔다.

 

졌어.

 

작게 웅얼인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 원하던 바를 이뤄서 기쁜건지 알 수는 없었지마는. 확실한 것은 들썩이는 켄마의 가냘픈 어깨를 보면 그녀의 기분이 기쁘다는 것 정도.

 

쿠로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 간지러워.”

 

“으응- 조금만 더.”

 

“안돼, 여기 밖이야.”

 

 

쿡, 배를 찔러드는 켄마의 팔꿈치보다 앞서서 여기는 밖이라고 지정하는 말에 번쩍 머리를 쳐들은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연갈색 고양이 눈을 내려 봤다. 약간의 호선까지 머금은, 보기 드문 것들의 조합은 그를 춤추게 만들었다.

 

 

“게임… 빨리 사면, 집에 가자.”

 

“애, 플 파이는?”

 

“내일 쿠로가 두 개 사줘.”

 

“크흐. 알았어.”

 

 

사랑해, 작게 속삭인 말에 곱게 휜 눈웃음은 가히 경국지색 급이라서. 쿠로오는 저의 옆구리를 가격하는 매서운 손길에도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그의 고양이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그를 따랐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그를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앞에서 유난히 날카롭지 않을 뿐이었다.

 

 

“켄마.”

 

 

똑똑. 가볍게 두드리고 조금 기다리니 안에서 꺼질 듯 희미한 목소리로 들어오란 소리가 새어나왔다. 쿠로오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찰칵, 맞물린 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위에 웅크린 채로 있는 그의 고양이가 있었다.

 

노란 물이 빠져 점점 뿌리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검은색이 어쩐지 기분이 좋아서. 그는 성큼성큼 긴 다리를 뻗어 그녀의 곁으로 갔다.

 

 

“자, 밥 먹으러 가야지?”

 

“조금만 더. 이거, 결승이야.”

 

 

 

그의 고양이는 어릴 적부터 혼자가 익숙한 아이였다. 고독, 외로움. 그런 것보다는 사람의 시선에 예민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조금만 자신들의 기준에서 어긋나면 곧잘 이상한 사람이라는 등 구는 기색이 심했다. 그의 고양이는 그런 거북한 시선을 불편해 했다.

 

근본이 상냥했기 때문에 이용하려 드는 사람도 많았고 그걸 또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그녀였기에 거리는 점차 벌어졌다.

 

결국에. 혼자가 되어 버린 그녀는 게임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게임이라면 온라인상의 교류를 밀어내지 않으니, 외롭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질투가 나서. 그래도 곧잘 게임을 내려놓고 저와 놀아주곤 하던 아이였는데. 쿠로오는 내심 무생물에게 질투하는 저가 우습기도 하고 또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켄마에게 섭섭하기도 해서. 긴 숨을 내쉬면서 잔뜩 웅크린 자세로 게임을 하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쳐내지는 않았지만 일순 찌푸린 미간을 본다면 곧장 치우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지 몰랐지만, 쿠로오는 그러지 않았다.

 

달달하게 오르는 사과향은 그를 애타게 만들고 있었다.

 

 

“켄-마.”

 

“쿠로, 기다려.”

 

 

어쩐지 멍, 하고 대답해야 할 것만 같아서. 쿠로오는 입술을 삐죽인 채로 켄마의 머리에 그대로 뺨을 문질렀다.

 

 

“아.”

 

“죽었네.”

 

 

작은 직사각형의 화면 가득 찬 Game Over, 쿠로오는 어쩐지 추욱 늘어진 켄마의 어깨에 쓴 웃음을 삼켰다. 이대로는 그의 고양이씨는 자꾸만 게임을 생각하며 다른 곳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한 판만 더 하고 갈까?”

 

“─아냐.”

 

“내가 궁금해서 그래. 보스 깨면 뭐가 나올려나.”

 

 

결국 먼저 지는 쪽은 조금 더 사랑하는 쪽이 아닐까 싶어서. 켄마의 얇은 허리를 안아 번쩍 들어 올려 저의 무릎 위에 앉힌 쿠로오는 그녀의 새초롬한 눈이 흔들리는 것에 씨익 웃었다.

 

 

“…쿠로가 말하니까 해주는 거야. 딱, 한 판만이야.”

 

“그래, 고마워 켄마. 그럼 나 이렇게 봐도 되는 거지?”

 

“응.”

 

 

다시 세이브 파일을 불러 와 손을 움직이는 얼굴에 생기가 가득해서. 쿠로오는 킬킬 웃었다. 그의 고양이는 상냥했고 또한 솔직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에게 온전히 기대는 모습을 보일 때 더 사랑스럽다는 것을 아마 알고 있지 않을까. 그의 고양이는 눈치가 원체 빨랐으며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특기긴 했으니.

 

뭐, 아무렴 어떠랴. 어쨌든 그녀가 저에게 의지하고 기대는 것은 분명한 것이었으니.

 

 

간혹 두 사람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쿠로오 테츠로라는 남자가 코즈메 켄마의 보모가 아니냐, 그런 의문을 품곤 한다. 구태여 그것을 정정해주지 않는 켄마의 의중은 귀찮아서가 분명했지만, 쿠로오의 의중은 쉽게 파악되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익숙한 질문이겠거니 한다.

 

하지만 그 실상은.

 

 

“쿠로.”

 

“으응- 켄마, 조금만 더.”

 

 

바르작거리는 켄마를 품에 꽁꽁 가둬두고 하이얀 목덜미에 입술을 지분거리는. 한 마리의 짐승처럼 이를 세우고 매달리는. 언제나 켄마의 뜻대로 하되, 적당히 옳은 길로 이끌던 그의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은 남이 보기엔 낯설었겠지만, 켄마에게 있어서 이것만큼 익숙한 것은 또 없었다.

 

누군가가 ‘쿠로오는 코즈메의 엄마인거냐?’ 하고 물을 때마다 켄마는 귀찮다고 무시하지만, 쿠로오가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는 경향이 있었기에 조금 불편한 속을 다스릴수가 없어 매서운 말을 할까봐.

 

켄마가, 겁먹지 않도록. 천천히. 그녀를 손에 쥐고 흔들고 싶어서.

 

 

“켄마, 또 굶었지. 허리가 얇아졌어.”

 

“쿠로가 괴롭혀서 그래.”

 

 

퍽, 살갑고 조금은 빳빳하게 설지 모르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켄마의 모습에서 쿠로오는 쓰게 웃었다. 저 말은 액면 그대로의 말로, 그가 이렇게 추근거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등교해야 한다고 깨우는 것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귀찮은 켄마에게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말 그대로 괴롭힌다는 말이 만들어진다.

 

사랑하는 건데, 어째서 그게 그렇게 귀찮고 괴롭힘이 되나. 조금 섭섭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서. 문득 바라본 켄마의 왼손 약지에 자리한 반지가 계속 눈을 반짝반짝 자극해도 감흥이 없다. 불안함이 그를 집어 삼킨 순간, 설렘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쿠로.”

 

“으응-?”

 

“쿠로 때문에 가슴 커져서 속옷 사러 가야해.”

 

 

뾰로통한 어감, 적나라한 말에 순간 사고가 멈춘 쿠로오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묻고 있던 켄마의 어깨에서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가 조금 떨어져 여유가 생기자 고개를 돌린 그녀가 샐쭉이 웃었다.

 

 

“쿠로 때문이니까. 쿠로가 책임지고 나 데려가야해.”

 

 

어쩌면. 정말로. 쿠로오는 저의 눈앞에 있는 켄마가 고양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도도하고 주인을 집사처럼 부리다가도, 우울해 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무릎 위에 툭 발을 올려두는 애교를 부리는. 까칠하고 도도하고, 귀찮아하다가도 어느 순간, 툭 손을 내밀어 삐죽삐죽 상처 받은 마음을 다독여주는.

 

 

“흐응- 별로 안 큰 것 같은데. 보라고. 아직도 손에 다 잡힌다니까?”

 

 

부러 짓궂게 웃으면서. 마주친 눈에 장난기가 스미는 것에 쿠로오는 삐뚜룸한 미소를 지은 채 슬쩍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위로 올렸다. 말캉하게 손아귀에 착 감기는 그 살이 기분 좋아 웃은 순간 찰싹, 매섭게 때리는 손길이 퍽 아프다. 어느새 품에서 벗어나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다시 게임에 집중하는 그녀를 눈에 담으면서.

 

쿠로오는 나른하게 웃었다.

 

보모면 어떻고, 연인이면 어떤가. 어쨌든 제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