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마유(原田 麻由), 이 네 개의 한자가 모여 만들어낸 조합은 키타가와 제 1 중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의 대다수가 껄끄러워하는 존재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였다. 

참고로 오이카와와 사겼던 여학생들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의 고유명사이기도 했다.

*

키타가와 제 1 중학교, 줄여서 키타이치의 해는 망설임 없이 항상 올라선다.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가라앉는 그 긴 시간 동안, 어김없이 일상이 반복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주홍기가 맴도는 갈색 머리의 소녀 또한 그 반복되는 일상의 톱니바퀴가 되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자의보다는 타의, 더 명확히 말하자면 악연으로 맺어진 (당사자들은 거부하는) 약혼자인 오이카와 토오루에 의해서 형편없이 구르고 있었다. 


“너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뭣도 모르는 타교의 학생이 득달같이 달려와 울면서 그녀의 뺨을 올려붙이는, 그런 달갑지 않다 못해 욕이 나올 정도로 짜증스런 일상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오이카와군이 헤어지자고 한거라고!”


엉엉 울면서 말하는 것치곤 발음이 상당히 정직하다. 애초에 빨간 투우사를 보고 흥분한 소처럼 득달같이 달려오는 와중에 인공눈물을 들고 눈가를 비볐던 아이니, 그 사이에 안약 한 두 방울 떨어뜨려 눈물 만드는 것 쯤이야 쉬웠으리라. 

소녀, 마유는 꽤 세게 얻어맞았는지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저에게 다시 손을 올려 보이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너, 정말 간도 크다.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와서 날 때리고 핍박하는 거니?”


갸웃, 기울어진 고개에 아예 뺨을 때리라고 들이민 것이나 다름없이. 마유는 살과 살이 부딪쳐 만들어내는 쩌렁쩌렁한 소리에 눈가를 찡그렸다. 바로 귓전 아래에서 울리는 그 찰싹이란 소리는 중학교에 입학한지 어언 3년째(365일이란 날짜 중 적당하게 65일을 빼서 세 번 돌은 동안) 이어진 것인데도 불구하고 영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애초에 집에서 애교 많고 어린 냥 많은 외동딸로서 자란 그녀에게 손을 휘두를 정도로 대범하고 얼굴 한, 두 번 보고 말 낯선 사람이 몇 명 안 되긴 했지만.


“하! 오이카와군이 봐줄 거라고 생각해? 너를? 너랑 내가 이렇게! 울고 있는 내가 앞에 있는 데?!”

“응, 토오루는 당연히 너보단 날 걱정할 거야.”


얼굴에 맞은 자국 매달고 집에 들어가면 쏟아질 무언의 협박 및 기타 등등으로 골치 아픈 일을 두어번 겪고 나니 학습능력이 생겼거든. 

나른하게 덧붙이는 말은 어쩐지 끝에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 있어서.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님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라. 당연히 ‘여자 친구’인 자신의 편을 먼저, 그것도 울고 있는 그녀를 감쌀 것이라고 생각했던 타학교의 교복을 입고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던 소녀는 잠시 주춤,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당사자를 앞에 두고 무시하면서 말하는 모습에 껄끄러움과 불안감이 슬금슬금 기어오르고 있었다.


“-유!”

“어이, 하라다!”


그것도 잠시, 멀리서 소리치며 달려오는 저의 연인에, 그것도 자신의 이름인 ‘시유’를 부르며 달려오는 모습에 감동하는 소녀를 감흥 없이 바라보던 마유는 이내 얼얼하게 올라오는 양 뺨을 감싸 쥐고 손끝으로 살살 문질렀다. 

그녀의 경험상 이렇게 할 경우 매우 연약한 살결은 쉽게 더 달아올라 이 사태를 만든 이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데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되곤 했다.

…약한 피부 만세.


“하라다!”

“안녕, 이와쨩.”


한발자국 떨어진 장소에서 사납게 눈을 치켜뜬 저의 약혼자, 그러니까 이런 사태를 몇 번이고 겪게 만든 징글징글한 딱 둘 있는 소꿉친구 중의 한 명이자 당사자인. 오이카와를 힐긋 흘겨 본 마유는 저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거친 외향과 달리 섬세한 손길로 뺨을 어르는 또 다른 소꿉친구, 이와이즈미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가라앉은 먹색의 눈동자가 저조한 기분을 말하고 있어서 그녀는 구태여 입을 열지 않고 뺨의 붓기와 홧홧함을 가라앉혀 주는 차가운 손에 더욱 깊이 뺨을 기댔다.


“몇 대나 맞은 거야?”


가라앉은 목소리가 퍽 차갑다. 하지만 마유는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 저에게 향한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오히려 그녀에게 향하는 것은 걱정, 미안함, 안쓰러움 등의 오랜 시간 속에서 녹아들고 만들어낸 깊고도 진한 감정에서 올라온 것들이었다. 

그녀는 저의 뺨을 시원하게 어루만지는 이와이즈미의 양 손에서 마음껏 뺨을 식히면서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덜 된 간크고 대담한 여학생을 보며 가늘게 눈을 휘었다. 

저가 좋아한다고 저리 매달리는 이의 눈이 얼마나 차가운지 아직도 본인은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리도 선명하게 적의를 태우고 있는- 아주 명백한 거절을 뜻하는 그 눈을. 안타깝게도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코야마 시유. 마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언제나 상냥했던 목소리가 퍽 사납다. 목소리만으로 지금 자신이 화가 났음을 차갑게 일깨우는, 그런 날카로움을 품고 사납게 떨어져서. 이와이즈미의 품에 숨어 어느새 그녀를 등 뒤로 숨겨버린 오이카와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제 몇 번이고 봐서 달달 외워버리기까지 한 비디오가 그의 위로 오버랩 되었다. 작은 갓난 아기, 하지만 지금은 저렇게- 큰. 다만 여전히 그는 소년이었고 사고뭉치였으며, 그녀에게 불편한 일을 일상으로 만들어준 귀찮은 약혼자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친구들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아끼고 아껴주는 사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지라. 

그녀는 적당하게 상황을 정리하고자 길게 숨을 내쉬며 저의 뺨을 감싼 이와이즈미의 손등을 톡톡 손끝으로 부드럽게 두드렸다. 


“토오루.”

“마유, 잠깐만.”

“나 두 대 맞았어. 오늘 네가 치즈케이크 사고 내일 오코노미야키까지 사줘야 한다는 뜻이야.”

“당연히 그럴 거니까 잠깐만 기다릴래.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야.”

“됐어. 이미 네가 내 편 들은 순간 끝난 거야.”


뺨까지 때리고 당연히 자신을 믿어주고 편들어 줄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날카로운 적대만 받았다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클까. 마유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고는 저를 가리려 드는 이와이즈미의 옆구리에 강한 촙을 넣어 물리치곤 곧장 오이카와의 옆에 다가가 섰다.


“토오루. 가자. 나 이젠 더 이상 쟤 목소리도 듣기 싫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팔을 걸고, 그것을 밀쳐내지 않고. 어깨에 기대 올려다본 시선에 묻어나는 애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를 보면서. 눈앞의 소녀는 진심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러면 무엇하나. 이미 모든 게 멋대로 끝이 난 이후인데. 심드렁한 표정의 마유는 앞장서서 소녀를 지나쳤고, 이와이즈미가 그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오이카와는 그런 소녀에게 하나의 통보를 날렸을 뿐이었다. 소녀가 꿋꿋하게 외면하고 있었던 그 잔인한 통보를, 다시 한 번 확인 사살하듯 단호하게.


“헤어지자고 말한 순간, 이미 우리는 연인관계가 끝난 거야. 너무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아줄래? 귀찮으니까.”


툭, 매달려 있던 눈물이 처연히 떨어지는 모습에 감흥 없이 지나가면서. 오이카와는 그저 앞서가는 마유의 이름을 크게 불렀을 뿐이었다.


“빨리와, 토오루! 두고 간다?”

“야야 마유! 시작점이 다르잖아! 반칙이라고!”

“시끄러! 늦은 놈이 늦은 거지!”


도대체 그건 또 무슨 논리야, 픽 웃은 오이카와는 걸음을 멈추고 불퉁한 얼굴로 저를 기다려주는 마유와 얼굴 가득 화를 담고 있는 이와이즈미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설프게 잡혀 있던 옷자락은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스륵, 떨어졌다.


“정말 내가 너 때문에 오늘도 이게 뭐야! 난 적어도 오늘은 이와쨩 때문에 불려나갔으면 했다구!”

“하? 거기서 내가 왜 나오는 건데, 바보하라.”

“어유, 너야 말로 바보지. 바보이와쨩! 바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더니 이내 어깨까지 으쓱하면서 한숨을 길게 쉰 마유는 저의 곁에 다가와 뺨을 살피는 시선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 오른쪽의 대각선으로 올라선 턱에 맨 처음 얻어맞았던 뺨이 선명하게 그 시선에 닿았다.


“이번 건 좀 세게 맞았네. 안 아팠어, 마유?”

“네가 맞아볼래? 내가 똑같이 해줄 자신 있는데.”

“아프면 똑같이 반격을 하던가. 왜 왼쪽 뺨까지 내줬어!”

“너, 자꾸 내 말 모르는 척 씹는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꼴 났는데, 나한테 짜증이야?!”


정말이지 네가 싫다며 정강이를 걷어차기 위해 발을 휘두른 마유는 허공을 헤집는 것에 작은 짜증과 화를 담아 쏘아붙이고는 이내 씩씩 큰 걸음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뒤에 따르던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도 그저 푸욱 숨을 내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