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벚꽃이 지고 풋풋한 녹색 잎의 내음이 향긋하게 흩뿌리는.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루에 한 번, 정겨운 소꿉친구들과의 전화가 하루의 낙이던 시절은 빠르게 지나갔다. 강호로 소문난 탓에 물밀듯 들어오는 연습경기의 조절만으로도 24시간이 부족했다. 더욱이 어린 학생의 손을 빌리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 코치가 사임, 그 뒤로 알맞은 인재를 구인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 빈자리의 무게가 그녀를 짓눌렀다. 일단 코치를 구하기 전까지 그 자리까지 그녀가 커버하다보니, 이젠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리는 결단코 없었기에 리아는, 단호하게 전화를 잘라냈다. 자기들 건사하기도 힘든 녀석들에게 어찌 어리광을 부릴까, 그것도 자신이 초래한 일인데.

 

리아는 지친 숨을 내쉬며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와이즈미 상! 오늘 오후에 학생회 회의 있어요."

 

", 고마워요 하세가와 상."

 

 

기실, 배구부만이 그녀를 갉아 먹는 것이 아니었다. 수석의 자리로 입학하고 이후, 당연한 수순으로 학생부의 우두머리인 1학년 전체 회장직까지 겸임하게 된 리아로서는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즈미, 너 괜찮은 거야?”

 

괜찮아야지. 안 그러면 어떻게 해.”

 

 

앞문을 열고 소리치고 가는 학생회 서기, 하세가와의 뒤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같은 배구부이기 때문에 어느새 친분이 쌓인 짝지,보쿠토의 걱정 어린 말에 그녀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신입생 선서까지는 수석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입장이 강했었다. 그래도 리아는 딱 거기까지만, 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후에 쏟아진 당연한 수순의 절차에 목이 턱턱 막혔다. 배구부에만 몸을 묻으려 했던 그녀에게 있어서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수석이라는 이유 하나로 본의 아니게 떠맡은 반장 직까지. 학생회 일과 남자 배구부의 일을 겸하는 것이 그녀의 몸으로 버티기에도 슬슬 벅찼다.

 

 

그럼 나 담임한테 이거 제출하고 올 테니까 자지 말고 수업 준비 해놔.”

 

네이-네이.”

 

끼익- 길게 늘어지는 의자 소리가 거북했지만 보쿠토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그대로 책상 위에 엎어졌다. 매섭게 뒷통수를 가격하는 손길에도 어느새 고롱고롱, 코까지 골며 잠든 모습에 기가 막혀서. 리아는 밀려드는 짜증을 삭히기 위해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피곤과 짜증이 얼룩져 질척하게 달라붙었다.

 

리아는 제 몸 상태를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야 했다. 그랬기에 지금의 몸상태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 아무리 선수시절을 거친 고교생이라 할지라도, 말 그대로 거쳐 간 사람. 더욱이 여자. 더욱이 그만둔 지도 좀 되는. 아무리 기본 체력, 근력운동을 해도 감당되지 않는. 혼자서 매니저 일만이 아니라 코치직의 일까지 책임지고 있고 거기에 반장으로서의 잡무까지.

 

리아는 스스로가 지쳐가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하아."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이, 자신의 어깨에 매달린 그것이. 자존심이, 자부심이, 자긍심이. 무너지지 못하게 간신히 붙잡아 세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한계점인 것 또한 함께.

 

 

보고 싶네.”

 

 

주말, 딱 이번 주말 한 번만. 휴가를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