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는 고작 한시간만에 학교생활에 대해 묻는 사촌에게 무어라 답해야할지 아주 짧은 시간을 고민하곤 이내 핸드폰을 덮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것은 집에 가서 말해도 상관없었다. 고로 그녀는 도쿄의 명문이라 생색내는 건지 알 수 없는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방금 입학식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착착 교과서 배부가 끝나더니 대다수의 학생이 필기구를 갖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수업종이 울리고 수업자료까지 배부할 의욕을 지참한 교사가 들어오더라. 리아는 이번엔 절친이자 남사친인 오이카와로부터 쏟아지는 라인에 나가기를 누르곤 수업 진도를 차근차근 빼고 있는 교단의 선생님을 노려봤다. 필기구가 없으니 천상 암기해야하는 사정이었기에 그녀는 여러모로 바빴다. 사랑하는 사촌과 소꿉친구에게까지 신경쓸 여유는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거기, 창가 3번째 줄 남학생! 졸지마!"

 

", !"

 

 

착실히 그녀의 옆에서 지적을 받는 터라 자꾸만 집중을 흩트리는 이가 있었기에 더더욱 다른 곳에 한눈 팔 여유는 없었다.

 

 

"하아."

 

 

다만 이후에 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사촌과 소꿉친구에게 말할 거리가 생겼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제 겨우 학교생활을 막 시작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떻다 정의하긴 어렵지만. 정말 딱 한 가지 짝지와 관련해선 단언 할 것이 있으리라.

 

오이카와 토오루에서 이케맨스러운 요소만 빼면 딱 짝지라고, 그렇게 말하리라.

 

*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신 탓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동갑내기 사촌네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어린 마음에 남의 집에서 얹혀산다는 것보단 성별이 다르다고는 할지라도 같이 놀 친구가 생긴 것이 더 기뻤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사촌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에 초조했던 것은 아마도 사촌의 절친이었던 오이카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몸소 행동으로 보여줘 알 수밖에 없었지마는.

 

초면에 못난이 소리를 퍼부은 것은 약과였다. 이후로도 소소하거나 큰 장난을 마구잡이로 치고 도망치는 오이카와에 리아도 지치고 함께 있던 그녀의 사촌도 지쳤다. 이내 가만히 지켜보다 끼어든 사촌, 이와이즈미가 아니였다면 분명 둘 중 한명은 좀 귀찮은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첫 만남이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던 둘이 친해진 것은 또 이와이즈미의 공이 컸다. 그 뒤로 셋은 리아와 하지메, 토오루. 이렇게 동네어귀에서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시던 어르신들께서 성보다 이름을 부를 정도로 함께 뛰놀았다. 한창 예쁜 짓을 할 나이였고 갖고 싶은 것이 또 많을 때여, 부러 어린 양을 떨고(주로 여자인 리아와 낯가림이 적었던 오이카와가) 갖고 싶던 것을 얻어 함께 놀곤 했었더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서열은 아직까지 정리되어 내려오는 것이기에 리아는 자꾸만 막내나 다름없었던 오이카와를 떠올리게 하는 짝지에 푹푹 한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저 짝지를 보고 있노라면 갈비뼈 깊숙하게 묻어놨던 오지랖이 기운찬 인사를 하며 비죽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저기, 너 말이야. 수업에 집중 좀 해봐. 다음 주에 실력 테스트할 거라는 소리 HR시간에 못 들었어?"

 

", 진짜!?"

 

"정말 답 없구나 너."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쓸 시간 없어! 난 배구하기에도 바쁘다고!"

 

"그래, 그래. 여기도 배구바보가 있었구나. 하이고 내 팔자야."

 

 

어쩜 이리 하나부터 열까지 닮았을꼬. 리아는 머리를 짚으며 혀를 찼다. 오이카와 토오루도 배구바보였고, 막내였다. 눈앞의 짝지도 배구바보였고, 하는 짓이 막내스러웠다.

 

만난 지 고작 세시간만에 짝지의 성향을 파악한 그녀는 새삼스런 자신의 팔자에 한탄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딱히 배구를 싫다기보단 오히려 배구를 사랑하는 입장으로선 저리 열혈적인 학생이 있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으나, 그것도 정도 것이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지 못한 학생은 꼭 무언가 일을 터트리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주변에 있는 그녀에게 떠밀려 올 것이었다.

 

그런 귀찮은 일은 이쪽에서 사양하고 싶은 것이었다.

 

 

"거의 세시간만에 하는 인사 같은데, 있지 짝지군. 우리 앞으로 한 학기 동안은 계속 짝지니까 잘 부탁-"

 

"뭐어-?! 자리 안 바꿔?!"

 

"-. 그리고 사람 말이 다 끝나지 않았으면 좀 끝까지 들어 주지 않을 래, 이 새대가리야?"

 

 

활짝. 말 그대로 활짝 웃으며, 추욱 처진 짝지의 머리를 짓누르듯 꾸욱 눌러 짜증을 털어낸 리아는 그가 아프다 퍼덕거리던, 말던 상관없이 정강이를 뻥 차주는 것으로 화풀이를 마무리했다.

 

 

"아팍!"

 

"어머, 아프라고 때렸는데 당연히 아프지. 간지럽다고 하면 더 차주려고 했는데."

 

 

퍽 사랑스럽게 웃으면서. 리아는 짝지의 머리를 헤집었다. 솔직하면 얼마나 좋니, 덧붙이는 말에 묻어나는 진심에 짝지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허우적거렸다. 그 모습이 퍽 우습고도 또한 오이카와를 떠올리게 해서. 그녀는 퍽 나른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더라.

 

문득 과거의 일 하나가 떠올랐다. 이전에 오이카와는 괜히 허세 부린다고 얻어맞고서 간지럽지도 않다고 말했다가 플라이 니킥을 맞을 뻔했었더라. 물론 사전에 막혀서 악에 받친 리아가 저를 말리는 사촌에 발만 동동 굴리다 퍽하고 오이카와의 급소를 걷어차기야 했지마는. 그 날 리아는 정말 땀을 뻘뻘 흘리며 방에 틀어박힌 오이카와를 달래야했었더라.

 

이것도 이젠 다 웃으면서 말하고 떠올릴 수 있는 추억거리 중 하나가 될 정도라니, 물 밀려 오듯 들어오는 그리움에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싸했다.

 

 

"하여튼 지적 작작 받아. 괜히 네 짝이라고 나도 지적 받으니까. 난 수업엔 집중하고 싶다고.".

 

 

괜스레 떠오른 과거의 추억은 고이 접어 휘날리며. 리아는 무어라 말을 하려는 짝지의 고개를 친히 앞으로 돌려준 후에야 시간표를 체크해 다음 수업의 교과서를 꺼내들었다. 전 과목 암기는 제아무리 그녀라 할지라도 무리였다. 아니, 다른 곳이었다면 모를까 명문이라는 이름 아래 제법 빡세게 나가는 탓에 그녀 또한 이젠 한계였다.

 

막 전 시간부터 숨 쉴 틈 하나 없이 빡빡한 진도에 메모장 대용으로 사촌과의 라인에 주요내용을 적어두는걸 잊지 않으면서. 그녀는 다시 울리는 수업 종에 깊은 숨을 내쉬며 허리를 곧게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