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행(紀行) 10
오전에는 잇세이더니, 오후에는 그 녀석이다. 귀찮은 녀석, 짜증나는 녀석. 왜 왔냐고 쏘아붙이는 말에 능글맞게 웃으면서 핸드폰을 인질로 삼고 있다는 우습잖은 말이나 던지며 간호인 석에 앉은.
“왜 혼자 있냐.”
“일로 바쁘고 정신없는 사람들한테 있어 달라고 할 만큼 모자란 애 아니거든? 혼자 있어도 상관없어.”
발작 때문에 입원한 것을 알고 있는 녀석의 눈이 못 마땅하다는 듯 비틀렸다. 무시했다. 저가 뭔데, 내 인생에 참여하려 드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먼저 발을 디디길 거부한 것은 너였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초등학생이란 어린 시절이라 할지라도 너는 명백한 거부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제와 그게 뒤집어 질 리가 없었다. 너는 내게 원해서도, 강요해서도 안 된다. 그 누구도 아닌 네가. 나를 거부했던 네가.
너는, 절대로 내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아주머니는.”
“마찬가지잖아.”
그녀는 잇세이의 모친이다. 나와 혈연적인 관계가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반쪽이나마 같은 피가 흐르는 잇세이면 모를까, 그녀는. 아니다. 상냥하기만 한 그녀는, 잇세이의 부탁이라면 거절하지 못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가 혹여라도 부탁했다면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낼테니까.
싫어. 나 때문에 그녀에게도, 잇세이에게도 피해주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아예, 거리를 두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이 좋았다. 가지 않겠다는 기색이 역력한 그녀를 억지로 떠나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은, 그동안 점심도 거르고 내리 자긴 했지만.
“혼자 있었다고?”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가 싶어서 바라보니 너의 얼굴은 엉망진창.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째서, 라는 생각은 부러 삼켰다.
“야, 너 진짜.”
“시끄럽고 내놔, 핸드폰.”
어제 밤의 일은 단편적이다. 조각나서 찢겨진 불완전한 것으로,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그런 불길함이 미묘하게 자리 잡아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녀석에게 손을 내미니 홀라당 시선을 피해버렸다.
“내놔.”
“─알았다고.”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떨어트렸을 때의 충격으로 배터리가 분리되었던 것으로, 절대로 죽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는 녀석의 맹세까지 듣고 나서야 안심하고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잠시 가만히 있던 핸드폰은 무섭게 온몸을 떨어대며 자신의 중요성을 알렸지만, 어쩌랴. 이미 지나간 시간인 것을.
“스미-레?”
“왜 남의 핸드폰을 몰래 보고 그래? 불법이야.”
침대 옆으로 기어올라 엉덩이를 붙인 녀석을 팔꿈치로 밀어내며 사납게 노려봤다.
스미레란 이름은 언제나 내가 그 앞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불리는 것조차 원치 않는 지독한 소유욕에 굴려진, 나만의 부름. 그가 허락한. 오직 나만 부를 수 있는 것, 그래서 더 무겁게 짓누르는.
“누군데.”
“무슨 상관이야?”
마지막 통화 이후로 쌓인 부재중 통화, 메일. 한 가득 쌓인 그것을 차마 녀석 앞에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핸드폰은 껐다. 혹시라도 녀석이 있을 때 스미레와 연락이 닿으면 피곤해질 것만 같았다. 분명 두 사람은 붙여두면 사이에 있는 날 귀찮게 할 사람들이었달까.
피곤하다는 뜻을 알리기 위해 머리를 짚으며 길게 숨을 내쉬니 옆에서 떽떽거리던 소리가 줄어들었다. 이 점만큼은 좋지. 작게 중얼인 소리를 들었는지 코웃음치는 짧은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케이크 사왔어.”
“용케 안 걸렸네?”
아마도 지금의 나는 간호사들이 주시하는 환자일텐데, 저 당분덩어리를 참 아무렇지 않게 들고 왔다 싶어 툭 말을 던지니 씨익 웃는 모습이 조금 짜증났다. 내가 좀 대단해, 같은 식으로 짓궂게 웃고 있는 모습에서 불쾌감이 살금살금 기어올랐달까나.
그래서.
“아-하.”
“어쩌라고.”
콱 꼬집은 얄미운 볼을 흔드니 미간을 좁히는 것에 실소가 터졌다. 지가 그런다고 내가 무서워할 줄 아나. 비웃음만 매달고서 손을 거두니 투덜투덜, 듣기도 귀찮아 아예 관심을 끄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간 다녔던 그 어느 곳보다 가장 익숙한, 단편적으로 잘린 기억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 거리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오랜 시간을 헤매던 와중에도 가장 그리웠던 곳. 하지만, 그만큼 가장 오고 싶지 않았던 곳.
“아사쿠라.”
“아?”
코끝을 간질이는 깊은 달콤함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섰다. 녀석이 멋대로 사와서 몰래 들여온 케이크가 병실 침대에 붙어 있는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언제 이걸 또 펼쳤나, 싶을 정도로 거리에 빠져 있었던 것인가 라는 자괴감이 살금 들었지만, 무시하고 눈앞의 케이크 행렬로 생각의 초점을 맞췄다.
“딸기 쇼트 케이크, 몽블랑, 초코 브라우니, 까망베르 치즈 케이크. 또 이건 뭔데.”
“몰라, 신작이라길래 사왔는데. 슈크림으로 만든 케이크랬나.”
사실 먹는 것에 가리는 것 없고 딱히 구분짓는 것도 없어서 녀석이 가져온 케이크들 전부 한입씩 먹어볼 수는 있었지만. 마지막의 저 하나, 슈크림으로 만든 케이크 하나만큼은 손이 가지 않았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게 가장 먹고 싶었다는 점이지만.
“야, 포크.”
일회용 포크는 앙증맞았다. 정말로. 앙증맞게, 그 가게의 마스코트로 추정되는 토끼모양으로 만들어진. 어쩐지 그 포크를 보고 있자니 점점 시선이 올라가- 녀석을 보게 되어서. 그냥 손 안에서 굴리고만 있다가 이젠 맞은 쪽으로 자리를 옮긴 녀석을 보았다.
“왜?”
“젓가락.”
“없어.”
그냥 포크 쓰라며 의아하게 바라보는 녀석에 더 토끼가 생각났다. 아, 어쩐지 토끼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토끼자체가 싫어졌다. 기분 나빠. 작게 중얼인 소리를 또 용케 들은 녀석이 눈가를 찡그리며 바라보는 것에도 여전히 포크를 손안에서만 굴렸다.
작은, 한숨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곧장 바로 몸에서 힘을 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아사쿠라.”
“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순간. 바로 코앞에 케이크가 있었다. 남들은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먹여준다는 시나리오를 쓸지도 몰랐지만, 녀석은 역시 남다른 머리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녀석이 내게 한 짓은 그냥 케이크의 밑에 깔린 호일채로 잡아 손으로 먹여준다는 것이었으니.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에 묻은 크림을 핥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적당한 깊이로 들어온 것은 베어 물고 고개를 뒤로 빼니 알아서 케이크가 떨어졌다. 녀석의 싱글싱글 거리는 얼굴이 짜증나서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더 화가 나는 것은 케이크가 맛있었다는 점이었다.
녀석의 호의가 담겨 있다는 것이, 맛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기 싫었지만.
“한입 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살짝 벌렸다. 녀석은 곧장 주지 않고 테이블 위에 팔을 얹어 턱을 괸 채로 씨익 웃고만 있었다. 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해주기가 싫어서 그대로 입을 꾸욱 다무니 바라보는 시선에 진득함이 어렸다.
어쩔 수 없는 거야, 맛있으니까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이 해주는 거야.
다독인 속이 조금 짜증으로 들끓었지만 눈앞의 케이크가 더 맛있었기 때문에 입술은 쉽게 떨어졌다. 평소라면 뻣뻣하게 굳었을지 모르는 혀가 부드럽게 춤을 췄다.
“하나마키, 줘.”
“그것도 좋지만 역시 이름.”
아. 이건 좀 도를 넘었어, 너. 곧장 얼굴을 일그러뜨리니 어깨를 으쓱하는 꼴이 재수 없었다. 말하기 싫어 입을 꾸욱 다문 채로 고개를 홱 돌리니 거리가 눈에 가득 찼다. 다만, 아까 전과 달리 짜증이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 평화로운 거리가 거슬렸다는 것을 뺀다면.
“하나.”
예전에는 잘만 했잖아. 같은 말은 어이없을 정도로 단조롭고 여상스러워서. 확 짜증이 치밀어 올라 그대로 발을 뻗어 맞은 편에 앉은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부르지마.”
“싫어. 하나. 하나. 하-나. 마츠가와만 부르고 말이야.”
“잇세이잖아. 넌 잇세이가 아냐.”
애초에. 오랜만에 본 얼굴을 보고 곧장 누구인지 알아차린 것은 기특했다만, 이름이 아닌 성을 부른 것은 너였다. 만난 직후부터 선을 그었던 것은. 너였고. 그 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것도 역시 너였다.
날, 마음대로 조종하지마. 그 남자와 마찬가지로 날 가지고 놀려 들지마. 나는, 장난감이 아니야.
차오른 숨을 씨근덕거리며 삼키니. 녀석은 여전히 의중을 모를 얼굴로 웃고 있었다. 입맛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