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한송이 04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오이카와의 조급증보다 더 우선인 것은 스포츠인이 아닌 마유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 그의 삐걱거림이었다. 부활 중에도 도드라지는 그 모습이. 초조함이, 그리고 아닌 척 자꾸만 신경 쓰는 듯한 무릎이. 초조함에 질식할 것만 같은 그,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면서 제 목을 스스로 조이는 그녀까지. 대놓고 말해서 대화가 단절되다시피 한 둘의 사이는 위태위태했다.
“토-.”
이름을 전부 다 부르기도 전에 상대방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오이카와는 점점 여유가 없어졌다는 걸 거기서 실감할 수가 있었다. 항상 제 이름을 다 불러주기도 전에 먼저 얼굴을 돌려 눈을 마주보면서 보는 이도 기분 좋게 만드는 시원시원한 미소를 짓던 이였다. 그랬던 그가, 조급함에 눈이 멀어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것조차 잊은 모양이었다. 마유는 조용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하라다 마유의 집안과 오이카와 토오루의 집안은 서로 친한 사이다. 다만 언제나 부모가 친하다고 해서 그 아이들까지 친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리고 그 성별이 다른 경우엔 더 극히 드물었다.
마유와 오이카와는 동성이 아닌 이성이었기 때문에 태중혼약은 무사히 지켜질 수 있기는 했다. 다만 하긴 했으나 태어난 아이들의 성격이라던가, 성향을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둘의 주변 어른들은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 같은 관계에 겁을 먹었다. 어른들이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한순간에 토라진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일촉즉발의 물건인지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사이에 껴서 웃다가도 살금살금 눈치를 보고, 좋은 기미가 보이면 둘이 대버려두거나 혹은 안 좋은 기미가 있을 땐 부러 시간을 어긋 내어 뚜렷한 귀가 시간을 조절했다.
어른들의 배려 때문이었을까. 이성의 둘은 후에 함께 할 이와이즈미가 무심코 질린 기색을 보일 정도로 완벽한 서로의 소꿉친구로 자랐다. 무난히 싸우고 울고 하다가도 항상 서로 손을 잡고 코를 훌쩍이며 들어오곤 했다. 서로 식성까지 닮아가고, 잠버릇마저 닮아가더니 기어코 성격까지 닮아가던. 마유는 항상 저의 오른손은 토오루의 왼손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익숙해졌다고. 잘 알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와쨩.”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로 오이카와가 죽어도 말 안해, 같은 말을 입에 담은 마유의 눈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오이카와녀석,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거니까 네가 이해해줘. 금방 정신 차리고 너한테 잘못했다고 빌고 그럴거야.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네가 좀 토오루를 잡아놔.”
“…하라다, 그건.”
“안 때려.”
짜증이 가득 어려 있지만 단호하게 잘라내면서. 때리는 건 정신 차린 후에나 할 것이라고, 병원에 간 다음이라고. 마유는 저를 보는 이와이즈미에게 그리 중얼이며 애써 웃었다. 정적 속의 고요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냐.”
“그럼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네가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나설 거라고 생각했어.”
이와이즈미의 덤덤한 말에 마유의 평온한 듯 그려냈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그 무조건 적인 신뢰에 전과 같았다면 당연하지라 수긍하고 자신했을 터인데, 지금의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믿고 있던 모든 것이 손바닥 뒤집듯 간단하게 뒤집힌 기분이었다.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녀석은 그녀에게 속내를 숨겼고 결국엔 그게 곪아버린 지금에도 말을 삼키고 있었다. 또 다른 소꿉친구는 그녀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 나름의 이해를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라다 마유라는 여자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흔들림을 느꼈다.
“─어쨌든. 부탁해.”
“알았어.”
대화는 끝이었다. 마유는 저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고 머리를 짚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사실 마유는 여태까지 소꿉친구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연애기간에도 서로 상담해주는 등, 한시도 떨어져 있던 적이 없었던 탓에 그 누구보다도 오이카와 토오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소꿉친구라는 것 이전에 정말로 친구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저의 오른손을 잡아주는 왼손을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언제나,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 넘칠 정도로.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확신이 없었다.
정말로 오이카와는 그녀가 생각하는 사람일까? 그녀가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일까? 자신의 생각에서 오차 하나 없이 똑같은 사람일까?
고민은 그대로 돌고 돌아 그녀를 집어 삼키고 짓눌렀다.
그리고 그런 심란해 하는 마유를, 그녀보다 뒷자리에 있었던 이와이즈미는 별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침묵한 채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잘 알기 때문에 또한 잘 모른다고 하는 말이 이런 데에 쓰이는 걸까. 이와이즈미는 저의 곁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오이카와를 곁눈질했다. 마유도 그렇고 옆의 녀석도 그렇고 그에게 있어서 둘다 소꿉친구라는 이름의 동생들이나 다름없었다. 무엇하나 편안하게 매년을 보내는 걸 참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인지, 매년 꼭 무슨 사건사고가 터져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작년에는 마유였고 올해는 오이카와였다.
전자의 경우는 금방 끝났던 이야기였지만, 후자의 경우는 어느덧 삼년 째가 된 고민이었고 현재 진행형으로 귀찮고 걱정하게 하는 일이었다.
“오이카와.”
“…응.”
그 말 많던 녀석이 입을 다물기 시작하더니 이젠 단답형의 말만 아주 간간히 툭툭 던지는 지경까지 왔다. 그동안은 어찌저찌 부활동만큼은 활발한 척 굴더니, 이젠 그것도 없어졌다. 다른 동급생, 후배들까지 이상 징조를 느끼고 있는 판국이니 분명 감독님과 코치진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오이카와의 조급증은 점점 더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이쯤하면, 그걸 끊어야 할 때였다.
“부활동 끝나고 기다려.”
“그래.”
어쩐지 무심한 눈은 지쳐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깊은 한숨을 애써 삼켰다.
마유라던가, 오이카와라던가. 둘 사이에는 이와이즈미가 끼어들기 곤란한 유대가 있었다. 분명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합류한 그와는 달리 두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친구하면서 지낸 사이였다. 그것은 미묘한 골을 만들었고 항상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이와이즈미였다.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상관없었고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랬다. 마유가 길을 잃었다면 오이카와가 먼저 찾았고, 오이카와가 안 좋은 상태를 숨기고 나타나면 마유가 불같이 알아차리고 득달같이 화를 냈다. 그 모습을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벌써 자그마치 9년째에 다 달았다. 무려 9년째였다. 코트 위에서나 가라앉았다 싶을 때, 마유보다 반발자국 늦기야는 하지만 다른 부원들에 비해 빠르게 알아차리고 말을 걸고는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밖으로 나오면 항상 마유가 두어발자국은 더 앞에 서있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의 삐걱거림이 별로 좋은 쪽으로 가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그는 조심히 했다.
“어이, 오이카와.”
“응?”
“─아니다.”
“싱겁네.”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걸. 이와이즈미는 잘 알았다. 어떤 식으로든 여파가 장난 아닐 것이라는 것 또한 역시.
부활이 끝나기까지, 이와이즈미의 생각은 더 깊어지고 확신에 찼다.
“원터치!”
“나이스 리시브!”
부원끼리 조를 나눠 시작한 연습시합. 감독님의 뜻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오이카와와 조가 갈린 이와이즈미는 네트 너머의 녀석을 가라앉은 눈으로 보았다.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녀석의 조에 예비 세터로서 그 카게야마가 있었다. 오이카와의 플레이가 조금 격해진 것이 보였다. 아닌 척 굴고 있지만 이미 카게야마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가 냉담한 것이 티가 났다. 그의 눈치를 살피는 후배들이 보였다. 서브였다, 오이카와의 차례인.
수도 없이 치고, 매달렸던. 그의 특기로 자리 잡은 점프서브. 어쩐지 그가 뛰어 오른 순간, 이와이즈미는 아웃이라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네트를 넘어서지 못할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네트는 넘어왔다. 넘어왔지만, 그대로 아웃이었다. 오이카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네트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였다.
자꾸만 시계를 힐긋거린 탓인지 유독 느리게 흐르던 시간은 결국에 계속 흘렀다.
“모두 정리 스트레칭 제대로 하고!”
몸을 풀고 힐긋, 던진 시선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마유가 담겼다. 오이카와는 묵묵히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로 몸을 풀고 있었고 할 말이 있어 보였던 카게야마가 주춤거리다 이내 저에게 시선 한줌 주지 않는 그녀에 포기하고 등을 돌렸다.
이와이즈미의 시선은 밑으로 향했다. 몸을 풀면서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을 되돌려 기억을 떠올렸다.
카게야마가 무려 3학년 교실 앞까지 와서 마유를 기다렸던 그날, 그녀는 저를 보는 카게야마에게 덤덤히 인사를 건넸고 충동적으로 그는 이별을 통보했다. 그에 마유는 무심한 눈으로, 그러자고 하면서 붙잡지도 않았고 충격에 빠진 그를 둔 채로 오이카와와 데이트를 하러 갔다. 부러 뒤로 빠져 있다가 카게야마를 찾은 그는 우울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마유는 기실 오는 고백을 거절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있어서 카게야마의 고백은 그냥 한때의 가벼운 연애였을 것이었다. 진심이건 아니건, 그녀에게 상관없었다. 마유의 마음 한구석엔 부모의 뜻으로 밀어붙인 약혼이지만, 오이카와라는 마지노선이 있었으니까. 그게, 그녀의 여유를 소리소문없이 손으로 덮어 가렸다. 카게야마는, 그에 대한 피해자였다. 이와이즈미는 그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동정하지는 않았다. 마유의 성격상 항상 고백을 듣고 답을 들려주기 이전에 먼저 하는 말이 있었다. 자신의 가벼운 연애에 대한 생각을 말했고 그것에 어떤 답을 돌려주나로 그녀는 답을 줬다. 그랬던 그녀였기 때문에 그걸 알고서도 연애를 시작한 것은 카게야마였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이래나 저래나,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라 한숨 쉬면서. 그는. 피곤함에 조금 거칠게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