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Dahlia

Two 7

 아힌 2015. 7. 6. 00:50



오후의 회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석한 부활이지만, 그녀가 빠졌다 해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오더를 작성해뒀기에 마음 한구석 편안히 안심하면서.

 

리아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회의에 차오르는 한숨을 삼켰다.

 

*

 

평소 부활이 끝나던 시간보다 훨씬은 더 늦은 귀가. 혹여라도 부모님이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까,기다리고 있을까- 같은 무난한 또래 여자아이들의 걱정은 리아에게 해당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녀에게 이번 주는 야근으로 자정 가까운 시간에 돌아갈 것이니 문단속을 철저히 하라던 사람들이 바로 그녀의 부모였다.

 

 

어둡네.”

 

 

거리는 한적했다. 부러 학교 근처의 집을 구한다는 그런 배려심은 가지고 있지 않던 부모였던지라. 적당히 집값 싸고 대중교통 이용이 원활한 곳이면 치안이고 뭐고 상관없단 주의였기 때문에,한 시간이라도 늦으면- 이리 거리가 어둠에 물들었다.

 

문득 리아는 이럴 때 옆에 사촌과 소꿉친구가 있었다면- 이라는 짧은 생각을 흘렸다.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흉흉한 세상 속에서 좋지 못한 소식을 어쩔 수 없이 듣고 살아가는 입장이었기에. 주머니 속 핸드폰을 찾아 헤매는 손이 제발 자연스럽기를 바라면서. 그녀는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손이 서로 엉키는 것에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옆에서 어깨를 붙잡았다.

 

 

!”

 

 

너무 놀라면 목소리도 안 나온다는 것을 이렇게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리아는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에 깜짝 놀라 겨우겨우 쥔 핸드폰이 바닥을 구르는 것도 몰랐다.

 

 

오늘따라 너무 늦는 거 아냐? 얼마나 기다렸다고 자-.”

 

많이 기다렸어? 미안해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툭 나갔기를 바라는 말을 끝마치고 헛숨을 삼킨 기도가 아프다 발악해도 그것을 참아내면서. 리아는 오이카와 때문에 종종 이런 일이 있어 연기가 자연스러워진 것에 안도했다.

 

조심히, 한 걸음 다가가면서.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쥐어주는 이는, 목소리는 퍽 익숙한 것이었다. 부활동으로 인해 훨씬 더 빨라진 등교시간마다 만나는, 옆집의 소년. 찡긋거리는 눈짓에 순식간에 퍼지는 든든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평소 나른한 눈빛의 소년이 조금은 사납게 웃고 있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박력과 경계심은 상당한 것이었다. 안도감까지 함께 전해주는, 그런 류의 의지가 되는. 어딘가, 소꿉친구인 오이카와를 떠올리게끔 하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스르륵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미안하면 빨리 안아줘.”

 

그래, 그 정도야 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참은 숨을 쏟아내며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으면서. 저의 어깨를 감싸 안는 손을 굳이 밀어내지 않고 더 그 품에 기대는 것에 옅은 비누향이 코를 간질였다.

 

리아는 그 품에 안겨 천천히, 떨리는 손끝을 감췄다.

 

 

-, 이제 괜찮아. 괜찮아.”

 

 

다독이는 손길에 왈칵 터질 뻔한 눈물을 애써 삼키면서. 아무렇지 않게 끌어안은 그 허리를 조심스럽게 안아 더욱 더 그 품 안에 파고들면서.

 

둘의 옆으로 낄낄 거리며 웃고 지나가는 한 무리를 곁눈질한 리아의 눈이 잘게 떨렸다. 집 근처에 질 나쁜 학생들이 많다던 학교의 교복이었다. 편견이라고 해도 좋았지만,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제 지나갔어.”

 

알아.”

 

 

그냥 조금만, 잠깐만.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린 불안감과 긴장이 얼룩져 쏟아져 내린 숨에 스민 물기가 어쩐지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이미 한 번 쏟아진 것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난처한 듯 웃는 소리가 귓전에 울렸지만 리아는 그저 씨근덕거리는 숨을 애써 다스릴 뿐이었다.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리아는 어느 정도 진정된 마음에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조심히 놓았다. 약간 흐릿한 세상이 아직도 눈물이 맺힌 모양이었지만, 그것을 신경 쓰기 보다는 갑자기 나타나 도와주고 품까지 빌려준 이에게 고맙다 인사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 흐트러진 머리를 귓등 위로 쓸어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 들어 올렸다.

 

 

고마워요. 그러니까- 쿠로오 상이었죠?”

 

아아. 뭐어, 별 거 아니었고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외면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씨익 웃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털털하면서도 배려해주는 모습이 마치 사촌, 하지메를 떠올리게 해서. 리아는 순각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울컥함을 애써 눌러 삼키고는 억눌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말, 고마워요 쿠로오 상. 답례를 해드리고 싶은데 지금은 마땅한 게 없네요.”

 

 

기실,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을 구해줬다면 딱 감사의 인사와 나중에 부모를 통해서 인사와 소정의 답례를 주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있어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한바탕 쏟아낸 울음 속에는 분명 여태까지 억눌려 있었던 모든 감정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본인이 선택한 일이요, 책임감을 가지고 꿈을 향해서 달려가기 위한 것이라 함에도. 소중한 사촌과 소꿉친구들, 그리고 중학교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에게도 질투할 정도로 배구가 좋았다. 아니, 사랑했다.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을 계속해서 보면서도 있는 힘껏 떠오를 수 없음에,토스를 올릴 수도 없고- 또한 그것을 칠 수도 없으며, 그 코트 장 위의 열기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숨 막히게 아팠던가. 반짝 반짝 빛나는 열정을 가지고 뛰는 그들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 먹먹하게 저린 것은. 애써 바쁜 생활 속에서 외면했던 것이 사소한 계기 하나로 확 터져 버린 것은. 그것을, 아무 말 없이 받아줬다는 것은. 거기에 담긴 배려는, 그저. 감사하다는 그 이상의 의미여서.

 

리아는 조금은 부끄러운 듯, 수줍은 듯 살풋 미소를 머금었다.

 

 

-, 정말 괜찮은데. -라고 말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괜찮다면 오늘 저녁 같이 먹지 않을래?”

 

 

가족이 나만 두고 외식을 나가버려서 말이야. 덧붙이며 교복 주머니 속에 손을 밀어 넣는 모습에 또 다시 사소한 배려가 간질간질 다가온다. 또한 원치 않던 것도 함께 알게 되어서. 조금, 불편해지는 속을 감추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다 이내 꽉 움켜쥐었다.

 

아아, 이 사람은 알고 있었구나.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찰나 리아는 조금 씁쓸한 사실을 깨달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제가 저녁 살게요.”

 

 

이 근처에 패밀리 레스토랑 하나 있지 않았던가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하면서. 슬쩍 머리를 넘기는 손끝에 눈물을 몰래 훔쳐내 숨긴 리아는 눈가를 문지르던 손에 뺨을 기댔다. 사는 것까진 과하노라 말하는 쿠로오의 뒤로- 한 소년이 난처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저녁 같이 먹는 건 쿠로오 상의 답례구, 저녁 사는 건- 뒤의 코즈메 상의 답례로 하죠.”

 

 

, 기다리신 것 같은데.

 

움찔 떨며 쿠로오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는 작은 소년에게 손짓하면서. 리아는 사이에 끼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매일 저녁 혼자 먹어서 좀 쓸쓸하니까. 알고 있었다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제게 시간을 내줄래요, 코즈메 상?”

 

 

해치지 않아요. 이웃사촌끼리 친목도모, 하는 셈 치자구요.

 

살풋 웃으면서 조금 부드러운 톤으로 자애롭게. 곱게 휜 눈웃음이 저를 어여삐 보이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리아는 느릿하고도 나른한 몸짓으로 손을 내밀었다. 쿠로오의 뒤에 숨어있던 소년, 코즈메가 조심히-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그 모습이 경계하는 고양이와 같아서. 터질 뻔한 웃음을 애써 삼킨 리아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웃, 기울였다.

 

흘러내린 머리칼이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그녀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지던 찰나에 작고 소심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조심히 어루만졌다.

 

 

애플파이라면.”

 

켄마, 애플파이는 밥먹고 나서.”

 

그래요, 디저트는 제대로 된 밥을 먹고 나서 먹어요.”

 

 

이래뵈도 매니저라서, 운동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 오지랖이 과해져서요. 밥 먹고 나면 꼭 애플파이 사줄게요. 덧붙이는 약속에 믿음이 생겼는지 작게 끄덕인 고갯짓에 리아는 그제서야 꺄르륵 소리 높여 웃음을 흘렸다.

 

쿠로오의 신기하다는 듯 코즈메와 리아의 사이를 왔다 가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