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Dahlia

Two 5

 아힌 2015. 7. 6. 00:49



일상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리 도쿄에 익숙해져도 마음 한켠, 그리운 고향 미야기를 애타게 찾는 작은 자신에게 익숙해질 여유 한줌 남기지 않고 그리도 빨리. 무엇이 그리 아쉬운가 싶을 정도로 그리도 빨리.

 

일부러 더욱 더 빨리, 잊기 위해서.

 

*

 

대개 신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부활 가입을 장려하는 여타 학교와 달리 후쿠로우다니는 일주일의 체험기간을 준 후에 일괄적으로 신청을 받았다. 마치 대학생활을 미리 연습시키려는 듯 임시 홈페이지를 개설해 정해진 시간 이후에 부활동에 신청하게 하는, 그런 기이한 시스템으로 운영하면서 신개념으로 부활동을 장려하더라. 그에 리아 역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여 부활을 신청했고 드디어. 그 부활의 면접을 보는 날이 다가왔다.

 

 

"그래, 이와이즈미 리아라고?"

 

"."

 

 

일대 일 면접, 테이블 하나와 파일철에 둘러 쌓인 서류, 그리고 의자를 두고 하는. 리아는 가지런히 다리를 모아 그 위에 가볍게 쥔 주먹을 올려두고 눈앞의 사람을 보았다.

 

이번 년도에 부임한 체육교사, 십여년 전 국가대표를 코앞에 두고 부상으로 인해 배구의 꿈을 꺾을 수밖에 없었던 사토 타카시. 당시만 해도 그의 부상은 재활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이 시대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면 충분히 복귀할 수 있었을. 시대를 잘못 타고 났던 안타까운 천재.

 

그리고, 그 위로 겹쳐지는-.

 

 

"이와이즈미 양은 왜 우리 배구부의 매니저를 지원했지?"

 

"저는."

 

 

새삼스럽게 그녀는 자신이 꿈꾸는 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곱씹었다. 꿈꾸는 자의 꺾인 날개를 보듬고 치료해 다시 날려 보내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 밖에 해줄 수 없는 지금의 처지가 조금은 서글프기도 한. 같은 장소에 함께 서서 그 열기가 담뿍 묻어나는 경기에 손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이 때론 여자로 태어나 행복했던 자신을 무시해서. 그것이 슬펐더라. 함께 코트 장 위를 밟고 뛰며 저를 온전히 믿고 올라오는 자신이 가장 치기 쉬운 토스를 향해 힘껏 팔을 휘두를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뒤에서 서포트하면서 그저 무너져 내린 이들의 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미어지고 찢겨지던 가슴은 결국 이리 저리 잔뜩 곪아 썩어 내리고 있더라.

 

그래서 도망쳤다. 도쿄로, 그들의 꿈을 뒷받침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게 꿈을 키울 수 있는 이곳으로.

 

 

"스포츠 의학과에 진학하고 싶어서요. 제가 매니저로서 서포트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죠.그걸 깨트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이쪽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선생님도 계시니까요."

 

 

짧게 삼키고 있던 숨을 내쉬면서. 리아는 살며시 내려뜬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가늘게 눈을 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노라, 그리 말하면서 그녀는 서류에서 눈을 거두고 저를 바라보는 사토에게 그저 조용히 미소 지어보였다.

 

 

"그 지원 서류, 보셨다시피 중학교 시절의 후반부에 매니저를 했습니다. 원래 선수를 꿈꿨고 재능도 있었으며 결과도 좋았습니다. 코앞에 별을 두고 있었죠. 하지만 중학교 재학당시 부상으로 인해 망가졌습니다. 격렬한 운동은 금지 당했거든요. 처음엔 보면 볼수록 그리워지고 날지 못하는 코트에 마냥 밉고 힘들고 스스로 지치더라구요. 한동안은 쳐다보지 않으면 괜찮을까 싶어 일부러 발걸음도 안 했어요."

 

 

짧게, 끊고. 내쉰 숨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흐르는. 질척한 감정. 리아는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그래도 결국 배구가, 코트의 열기가 좋아서 결국 뱅뱅 돌다가 매니저 자리라도 감지덕지하며 붙어 있었죠. 그러다보니 결국 이쪽으로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조용히 조근조근. 입술이 달싹이며 그려내는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힘있게 리듬을 그려내고 있었다. 노래하듯 흘러가지만, 뚝뚝 끊어지며 이어지는.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것은?"

 

"매니저로 지원했습니다만 재활이라거나 이런 곳에 손을 댈 수 있는 지위를 가진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가령 코치라거나?"

 

"."

 

 

스포츠 의학과에 진학하기 위한 스펙과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만큼 좋은 것도 없지. 이어서 말하는 사토의 말에 그저 미소를 머금고 가타부타 말없이 얌전히 입을 닫은 리아는 주먹 쥔 손은 곱게 겹쳤다.

 

 

"상관은 없지. 목표가 뚜렷하고 그만큼 지원을 받는데다 본인의 의지도 있으니. 근데."

 

 

짧게 끊어진 말에 리아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파일철을 내려두고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바라보는 사토의 눈길이 그녀를 훑어 내렸다.

 

 

"그냥 해줄 수는 없거든. 이래나 저래나 매니저가 하도록 내버려두면 그건 또 월권행위, 그렇다고 학생을 코치로 두면 지금 코치를 하고 있는 야마모토의 위치가 어정쩡해지고."

 

"그렇죠."

 

"그렇다고 이대로 보내자니 재능이 아깝고. 나도 봤거든, 입학식에서의 네 카리스마. 그 정도라면 체육계 남고생들 휘어잡기에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테고."

 

"아까우시죠? 고민되시겠네요."

 

 

피식. 웃으며 톡톡.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낮은 침음성을 흘리는 목소리가 꽤 진중하다.놀리듯 전하는 말이 예의 없어 보이기도 충분해서. 들썩이는 눈썹에 가늘게 휜 눈을 거두고 차분히 내려 보는. 덜컹, 침묵을 깨는 소리가 퍽 날카롭다.

 

 

"그런데 어쩌죠. 기회는 단 한번이에요. 놓치면 끝, 돌이킬 수 없어요.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겠죠. 그 시점을 놓치면 찾아온 기회일지라도 잡을 순 없어요. 그리고 그건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더 뼈저린 일이죠."

 

 

꼬집어 말하는 그것, 경유해서도 아닌 진심을 다해 찔러 넣은 비수는 사토와 리아, 그녀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서. 조금 지나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리아는 한 번 터진 말을 끊어낼 수 없었다. 말을 이을수록 울컥, 차오르는 주어지지 못했던 기회로 인해 결국 일어설 수 없게 된 다리를, 올라가지 않는 어깨를 버리고 꿈을 바꿔야했지 않았던가.

 

그런 경험을 소중한 소꿉친구와 3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우들에게 시키기엔 그녀의 마음은 여렸다.

 

 

"좋아. 테스트를 한 번 해보자."

 

 

그랬기에. 리아는 저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토에게 살풋 웃어보였다.

 

싫어도 맞는 말이었기에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는 그의 불만스러움이 피부를 타고 온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찌르릉, 타고 흐른 적의가 따가웠다.

 

어차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결과적으로 이와이즈미 리아란 한 패기 있는 여자아이는 배구부에 코치 겸 매니저로 지원, 조금 복잡한 절차를 통해 당당히 합격했다. 그것이 결과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전 당신들의 부상을 케어해 앞으로의 일에 도움을 주고자 이 자리에 어렵게 섰습니다. 반발은 듣지 않아요.

 

덧붙인 말이 퍽 사납다. 리아는 그저 활짝 웃으며 그리 말했고 그에 후쿠로우다니 배구부의 레귤러 및 일반 부원들은 퍽 골치 아픈, 막말로 나대는 매니저가 들어왔노라, 그리 여겼다.

 

 

"거기! 당장 러닝 멈추고 이리 와요! , 안와? 오라고!"

 

", !"

 

 

퍽 내던져진 연습 오더에 화들짝 놀라 겁먹는 얼굴이 이내 흉흉히 빛나는 리아의 눈길에 새파랗게 질렸다.

 

 

"아이고, 또 걸렸네~"

 

"역시 이즈미 눈은 못 속인다니까. 어서 와라 신입. 너도 우리랑 같이 케어 받자꾸나."

 

"지방방송 시끄럽습니다만. 휴식 필수라고 했는데도 말 안 듣고 야외서 따로 활동하신 두 분은 완치할 때까지 전력으로 케어 해드릴 테니 그리 아세요."

 

 

설렁설렁 흔들던 손이 이내 팍 꺾여 끄악한 얼굴을 가렸다. 그 위로 화사한 웃음소리가 섬뜩하게 꽂혔다.

 

 

"망했네."

 

"하하 같이 죽자 신입아."

 

그렇게 후쿠로우다니 학원의 남자 배구부에 분명 공식으론 매니저, 비공식으론 코치로 들어온 여학생이 생겼다.

 

다만, 그로부터 한 달이나 시간이 흐른 이젠 그냥 다들 공식 코치, 비공식 매니저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무서운, 기가 쎈. 그 사토 감독마저 휘어잡아 흔들고 저보다 배는 더 큰 덩치의 남고생을 짓눌러 버리는.

 

그녀는 배구부의 여왕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