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1
도쿄, 일본의 중심이자 수도.
확실히 미야기보다 밑에 지방인 것을 티내듯 열기를 담뿍 머금은 공기가 후덥지근하다. 바글바글한 그 사람 틈바구니를 파헤치고 다니면서 사람과 사람 간에 오가는 분위기조차 다른 갑갑함에 젖어 폐부를 짓누르는 숨이 더없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그 더운 들숨 하나 밖으로 내보내는 것조차 힘들어서, 억지로 토해내듯 내쉬는 것도 버거워서.
소녀, 이와이즈미 리아는 거칠게 머리를 헤집어 쓸어 넘기고는 작게 혀를 찼다. 근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여즉 익숙해지지 않은 공기가 거북하게 그녀를 옭아맸다. 불쾌하게 달라붙는 묵직하면서도 매캐한 공기가 미야기에 물들었던 폐부를 짓눌렀다.
“하.”
낮은 숨에 담긴 경멸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공기에 익숙해지지 못했을 뿐더러, 결코 익숙해질 마음도 없었다. 단지 원하는 것을 위해 참아야 하는 정도의 그런 부수적인 것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것으로 얻어야 할 것들을 위해 참아야 하는, 그냥 그런 정도의 것.
그저 갑갑하게 옭아매는 모든 것을 떨쳐내듯 힘차게 걸음을 내딛으면서 비죽 튀어나오는 이죽거림을 애써 억눌렀다.
절대로, 익숙해질 리가 없었고 익숙해질 마음도 없었다.
"아아, 하지메랑 토오루 보고 싶다."
마른 입술을 축이는 혀가 움직여 만들어낸 어감이 아직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퍽 그립다. 아니, 벌써 일주일인가. 소녀는 저의 말을 정정하며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오고가는 사람들 속에서, 벌써 오늘의 해가 저물고 있었다.
보고싶다,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말 하나에 무수히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
새로운 학교라는 것은 사실 어색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라면 오늘 같은 날 혼자서 이렇게 쓸쓸히 서있는 일 하나 없이 함께 자란 자신의 사촌과 소꿉친구의 곁에 있었을 텐데. 혹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같이 진학한 친구들과 함께 작당해서 무언가 재밌는 것을 터트리곤 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원수덩어리지만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그 두 사람은 지금 곁에 없었다. 그게 퍽 재미없고 못마땅한 것은 자신은 혼자지만, 그 둘은 ‘함께 있다’라는 명백한 사실이 배알 꼴릴 정도로 부러워서이지 않을까.
리아는 손가락 끝에 머리를 걸고 문지르며 단상 위의 연설이 어서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아, 언제 끝나 진짜."
벌써 5분 째 교장선생님의 마지막으로-가 반복되고 있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그 ‘’마지막으로‘라는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연설 속에 허덕이던 리아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감에 살짝 눈치를 살피며, 치마 주머니 속의 딱딱한 물체를 손에 쥐었다.
익숙한 형태의 그것을 손끝으로 더듬어 버튼을 찾아 누르고 꺼내니 혹시 몰라 무음모드로 바로 바꾼 과거의 자신을 칭찬해야할 정도로 1초 간격으로 라인이 쏟아지고 있었다.
“…뭐야, 얘네도 입학식 아닌가.”
이 정도라면 진동으로 바꿔놔도 벨소리마냥 울릴 정도였으리라. 계속 해서 쉼 없이 오는 라인에 이젠 겁이 날 지경이다. 리아는 어쩔 수 없는 어리광쟁이라, 작게 웃으며 1초 간격으로 저를 부르고 있는 오이카와에게 가볍게 닥쳐, 란 라인을 보냈다. 물론 그녀의 사랑스럽게 매를 버는 소꿉친구는 정신을 못 차리고 서운하다는 둥 너무하다는 둥 이것저것 헛소리를 늘려놔 더 정신 사납게 굴었지마는. 결국에 그녀는 최후의 수단으로 산을 형상화한 손가락 그림을 보내주고는 바로 방을 나왔다.
“하-지메도 보냈네?”
오이카와에 휩쓸린 사이 보낸 모양이라, 생각하면서 리아는 손을 미끄러뜨렸다. 오이카와가 계속해서 난리를 치는 방이 다시 삭제되었다.
“아예 차단까지 걸어버릴까.”
슬슬 귀찮아져 고민하던 참에 일단 무시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서. 한참 시끄럽게 하는 쪽과 대조적으로 달랑 하나 보낸 하지메의 것을 노려보았다. 과한 소꿉친구 때문인지 무심한 사촌의 배려가 묘하게 기분 나쁘지마는, 일단 계속해서 시끄럽게 구는 오이카와보다 수백 배는 나았다.그래서 그녀는 특별히 방을 폭파하지 않고 핸드폰 액정 위의 익숙한 이름을 꾸욱 눌렀다.
[도쿄는 어때? 우린 지금 입학식 끝나서 반으로 가는 중. 오늘은 HR까지만 하고 해산이라는데.망할카와는 무시해.]
참으로 그답다 싶은 문장의 나열에 키득키득, 입가를 가리고 웃은 리아는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썼다.
[도쿄는 4월인데도 더워, 우린 아직 입학식 중. 어디를 가나 교장선생님들 공통사는 다 가발 아니면 대머리랑, 마지막으로~인걸까? 계속 길어져서 힘들어 :(]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마지막 문장을 쓰려고 할 때 그제야 겨우 교장선생님의 연설이 끝났다. 서둘러 메일을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일순 시선이 닿았지만 곧 흩어졌다. 이제 다음으론 신입생 대표의 연설과 선서만 남은 것을 저들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리아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흐트러진 학생들의 대열이 빤히 보이는 자리에 서서 홀로 말하다 홀로 끝내는 것은 딱히 좋아하는 쪽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화가 나서 대충 보려 했던 시험을 작정하고 본 자신 탓이니 누굴 탓하랴. 소녀는 올라가라는 학생회의 손짓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탁탁 털었다.
"이와이즈미군 대본은 가져가야지!"
"필요 없어요. 다 외웠거든요."
당당하게. 그 누군가를 닮은 미소를 머금고서. 흐트러짐 하나 없이.
굽소리 조차 확 죽인 단정한 걸음으로 단상에 오른 리아는 이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 단상의 중앙에 위치한 또 다른 단상. 거기에 도달해 사뿐한 걸음으로 올라가서면서. 방금 전 교장선생님이 연설한 탓에 그녀에게 약간 높은 마이크를 잡아내려 고정하는 손길이 퍽 나긋나긋하다.
리아는 지루한 듯 몸을 꼬는 학생 반, 흥미롭게 보는 학생 반의 내부를 바라보다 활짝 웃었다. 문득 생각하고 보니 이곳은 미야기가 아니었고, 그녀가 다녔던 키타가와 제 1중의 학생들 대다수가 진학하는 아오바죠사이가 아니었다. 그 말인 즉슨,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이었다.
소란스러움이 진정되지 않음에 연설을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더 끌기만 하면서. 그녀는 의뭉스런 미소를 지은 채로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집중하기를 기다렸다.
"─정확히 4분 56초가 걸렸네요."
이게 무슨 시간인지 궁금하신가요? 여러분 모두가 저에게 집중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랍니다.
째깍째깍 흐르는 손목시계를 간간히 살피며 시간을 재던 리아의 입이 드디어 벌어졌을 때엔 기묘한 침묵이 가라앉았다. 대본을 잊은 것이 아니냐, 긴장해서 저런 것이 아니냐 걱정하며 단상에 올라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어수선하던 학생회는 일단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반쯤의 안심을 가슴에 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이른 안심이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옆 사람과 떠드는 그런 예의범절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까지 버젓하게 고개를 들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신기합니다만. 그런 개인적인 감상은 이 자리엔 어울리지 않겠지요. 그럼 이만 말을 줄이고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를 해결해야겠네요. 신입생 대표, 이와이즈미 리아. 연설하겠습니다. 좀 집중 하는 것이 이로울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 3열16번째 학우씨."
활짝 웃으며 지적한 그녀는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기며 외우고 있던 연설문을 나긋한 목소리로 읊었다. 사실상 어디에서나 똑같이 사용되는 연설문이기 때문에 톳씨하나 틀리진 않지만 첫인상이 꽤 인상깊었기에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금 사납고 무섭게 내리 꽂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뭔가 압박이 느껴진다는 그런 쪽으로.
본의 아니게 연설부터 선서까지, 순각의 기백에 눌린 학우들을 버리고 혼자 스트레이트로 끝내버린 리아는 인사를 하고 다시 평온한 걸음걸이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후쿠로우다니 제 78회 입학식이 끝났다.